21 견디는 와디
땅이 수척하였습니다. 물기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는 먼지만 풀풀 났습니다. 흙이 서로가 알갱이가 떨어져 부슬부슬 흩어졌습니다. 만지면 그저 깃털처럼 가볍게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내립니다. 단내가 났습니다. 가만히 잘 들으면 신음 소리가 났습니다. 메마른 땅이 누군가 밟으면 한없이 삭아져 내립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그건 자연 현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은 없지만 딱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처참한 이 꼴을 누구에게 보이기도 겸연쩍습니다. 단지 침묵하고 그저 삭아져 내리는 쇠붙이처럼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는 이미 희망이라고는 발 붙일 만한 데가 없습니다. 더 이상 가다가는 무엇이 어떻게 되리라는 염려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단계는 다 지나고 이제 남는 것은 버티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견디어 내는 것이 그나마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과 밖의 소리에 귀를 닫아야 합니다. 누군가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의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능멸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지켜보는 것이 최선인데 그래도 동정심이 있다고 쫓아와서는 한마디씩 내뱉고 갑니다. 용기를 잃기 말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기에는 너무 식상해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들을 안 보는 게 유익하지만 찾아온 그들을 박대하기도 그래서 마음대로 뇌까리도록 놓아주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를 맞으러 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구냐고 하면 아직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서늘함을 이미 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자국 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꿈 속에서였지만 혹자는 너무 간절해서 꿈에 나온 것이니 개꿈 정도로 알고 일치감치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는 게 나중에 덜 실망하지 않겠냐고 그를 위하는 척하면서 그의 깊은 곳을 찌릅니다. 그런 것에 이미 아랑곳 하지는 않습니다.
밤부터 으슬으슬하더니 하늘에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무언가 조짐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일부러 생각을 회피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세상 일이란 너무 고대하면 하나님도 질투하여 될 일도 안 되니 일부러 안 그런척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곁눈질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합니다. 그런 마음을 먹자 정말로 생각한 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거의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니 잠시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툭 하고 무엇이 그의 몸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닿자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툭툭 소리가 조금 더 들렸습니다. 그것이 빗방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몸속으로 후두둑 갈기면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그 빗방울은 아무런 여운을 남기도 못하고 아래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빗방울이 투신하듯이 마구 몰려왔습니다. 소나기는 아니지만 봄비는 하염없이 내렸습니다. 그의 몸은 아직도 마른 채 서 있었습니다. 몸이 이렇게까지 메말라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삶에서 아무런 생명도 없이 지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마다 흙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그 냄새는 이제야 생명을 품으려는 몸짓이 되었습니다.
밤새 내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빗방울이 몸을 감싸고도 남아서 떠오르는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와디가 이제 강이 되어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봄비에게 무언가 말하려 하니 이미 봄비는 저만치 가고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