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고쳐 쓰기는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의 노동이다
가지치기와 분재
손주들과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은유 만들기 외에 『초등 글쓰기 좋은 질문 642』에 나오는 질문들을 과제로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3,4학년 때쯤일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과제에 대한 답을 제출해 주면 제가 수정을 하고 저 나름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가장 눈에 띄는 게 반복되는 단어였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처럼’ ‘~같이’…, 이런 식으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접속사인 ‘그런데’ ‘그리고’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것들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쓰지 말라고 충고를 해도 정말 잘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2년이 지나니까 그런 습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전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맞춤법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하면 자동으로 맞춤법을 고쳐주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브런치’ 플랫폼에도 글을 쓰면 ‘맞춤법 검사’가 있어 클릭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오류를 지적해줍니다. 그러니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더군다가 책을 내면 편집자가 알아서 교정해 주니 부담이 훨씬 덜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쓴 글을 보고 맞춤법이 엉망이면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우선은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고쳐쓰기를 하면서 우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비문(非文)이 있나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비문 중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주어와 동사가 잘 상응하고 있나의 여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입니다만 저도 처음에는 주어와 동사가 호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 느낌으로는 베껴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저절로 이런 문제가 많이 해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근자에 와서 고쳐쓰기를 많이 하면서 저의 버릇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문장을 쓰다가 ‘~만’ 하면서 문장을 일단 끝마치고는 다시 이어쓰는 것입니다. 이런 행태가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대부분 복문이기에 단문으로 처리했습니다. 아마도 누구나 각자 나름의 버릇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어투에도 사람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 있는 것과 마차가지이겠지요.
또 하나 시제가 있습니다. 과거 시제로 문장을 시작했다면 과거 시제가 일관되게 흘러야 합니다. 별 생각을 안 하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 시제로 썼다고 해도 중간에 회상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현재로 말할 수는 있으나 일단은 시제를 일치시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문단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문단이란 문장 5,6개가 모여 하나의 생각을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개념이 없이 그냥 붙여서 써내려가기 일쑤였습니다. 문단을 시작할 때는 시작 글자를 한칸 들여쓰기가 일반적이지만 들여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단이 끝나면 줄을 바꾸어 써야합니다. 이것도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세련되게 쓰자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쓰기 책을 보면 저자들이 대부분 글을 다 쓰고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읽을 때 리듬이나 반복되는 단어, 어색한 문맥 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많이 들었으나 실제로 행하기는 적어도 저에게는 어려웠습니다. 실제 지금도 잘 시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은유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시라든가 수필이라도 산문시에 가까운 서정 수필을 쓰는 경우에는 문장을 은유로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봄의 이야기’라는 시리즈의 이야기 산문시는 일단은 수필로 다 써놓은 다음 문장 하나하나를 될 수만 있으면 은유로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문장을 세어보니 대충 50개 정도의 문장이었습니다. 능력이 안 되어 그렇게 하는 일이 저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고쳐쓰기를 할 때 의례 예를 드는 경우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입니다. 그가 『노인과 바다』를 4백여회 고쳐썼다고 합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저는 하라고 현상금을 걸어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문은 열 번, 스무 번 해도 엄청난 회수입니다. 고쳐쓰기는 분재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없는 가지들을 쳐내어 기품 있는 소나무를 만들어 내는 분재가는 고쳐쓰기의 대가일 것입니다. 그도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안목이 길러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루 아침에 다다른 안목은 아닐 것입니다. 글쓰는 이도 그러한 분재가처럼 고쳐쓰기의 기준을 항상 상기하면서 깊이가 있고 언어의 미적 감각도 울려줄 수 있는 실력을 가다듬어 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