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베껴쓰기는 양수기 역할이 아니다
베껴쓰기에 대한 유튜브도 많이 있습니다. 대여섯 개 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대부분이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베껴쓰기를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마음은 생기지는 않습니다. 제가 적어도 3년 반 정도는 베껴쓰기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집중적으로 해야 하지만 먹고 사는 직업도 있다 보면 그럴 수도 없습니다. 딴 사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여 시간을 내어 베껴쓰고, 퇴근하기 전 30분 정도 베껴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건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했음에도 저 자신이 글쓰기의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2014년부터 2,3년간 이순원 ‘소설쓰기 강좌’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순원 선생님의 베껴쓰기에 대한 강의를 세 시간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선생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어쩌면 무작정 베껴쓰기를 해 온 셈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의 포인트를 상기해 봅니다.
당시는 주로 단편 소설을 공부했습니다만 소설을 쓰려면 많은 경험과 자료의 축적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정육점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 어떤 작가는 6개월인가 1년인가 정육점에 취직하여 실제의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점이 제겐 어려웠고 자료를 많이 모으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시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아쉽지만 중도에서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게 친절하게 하나라도 가려쳐 주시려고 배려해 주신 선생님에 대한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첫째가 필사의 좋은 점이었습니다. 직접 써보면서 발전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름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예술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검도에도 수파리(守破離)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무조건 혼자서 연습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스승의 검술을 처음에는 모방하고 기술이 높아지면 스승의 검술을 타파하고 자신의 방법을 만들면서 나중에는 스승의 곁을 떠납니다. 글쓰기의 베껴쓰기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어떤 점이 좋을까요? 우선 베껴씀으로써 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고력, 구성력, 표현력을 자기도 모르게 배우게 됩니다.
둘째 이렇게 좋다고 하는 베껴쓰기를 그러면 왜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수업 받은 19명 중에 실제로 베껴쓰기를 하는 사람은 3명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무 쉽기도 하고, 매일 기약도 없이 한다는 것이 지루하기도 하고, 효과도 반신반의하게 되고, 그걸 하지 않고서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셋째, 그러면 베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가 이 글의 핵심 포인트에 해당합니다. 우선 손으로 쓰라고 합니다. 컴퓨터의 자판으로 쓰면 자칫하면 물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양수기 역할만 할 수도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대학 노트보다는 400자 원고지를 권합니다. 그래야 글의 분량을 측정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문장 단위로 베껴쓰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 점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이때까지 본 베껴쓰기를 말하는 사람 중에 이 점을 언급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타자수처럼 한 글자, 한 단어씩 옮기지 말고 한 문장을 머릿속에 온전히 외워서 옮겨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베껴쓰기가 육화가 되지 않고 단지 양수기 역할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문은 그래도 별 문제가 없으나 행이 4개, 5개가 넘는 복문을 외워서 쓰려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 즉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왜 이런 작업을 해야 하나요?
자기가 본받고 싶은 작가의 사고방식, 문장의 운영 방법을 내 몸에 육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문장 단위로 외움으로써 그러한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배어듭니다. 모범이 되는 선생님의 머리치기 기술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따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넷째 선생님은 13작가의 14작품을 베껴쓰기를 하라고 추천했습니다. 이광수의 단편 「무명」, 황순원의 「소나기」, 이청준의 「눈길」,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와 「완구점 여인」, 김승옥의 「무진기행」, 최인호의 「타인의 방」, 양귀자의 「원미도 시인」, 윤대녕의 「소는 여관으로 돌아온다 가끔」, 서하진의 「제부도」,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윤흥길의 「꿈꾸는 자의 나성」, 한수산의 「사월의 꿈」을 꼭 한 번 베껴쓰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베껴쓰기 작품의 첫 번째가 이광수의 「무명」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당연히 김동인의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 단편소설하면 당연히 김동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광수의 「무명」을 극찬했습니다. 감옥 안의 주인공이 다른 감옥수들의 생활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고 장면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졌습니다. 저도 읽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래서 이광수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짧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베껴쓰기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베껴쓰기를 해서 과연 이런 점이 좋아졌구나 하는 것이 제 스스로 깨달아지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주저함은 있다고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관적이긴 하지만 한두 가지 나아진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전보다 비문이 없어졌습니다. 특히 복문일 때 각각의 절에서 주어와 동사가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많이 없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문장력이 좋아졌다고나 할까요, 어떤 문장을 쓰면 자신도 모르게 어쨌든 하나의 문장을 완성합니다. 옛날에는 문장을 쓰다 보면 도중에 뭘 쓰지 하고는 멈추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베껴쓰기를 한 것은 이순원 선생님이 추천한 것은 물론 다 썼고 제 나름 선택하고 있는 산문은 김훈의 글입니다. 『자전거 여행』은 다 썼는데 거기 나오는 은유들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따로 정리하여 베껴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라면을 끓이며』를 반쯤 썼습니다.
시는 송재학 시집이 열 권 있는데 거의 다 베껴쓰기를 했고 마지막 시집인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을 반쯤 쓰고 있습니다. 어느 날 모방하고 싶은 작가의 글을 백번 베껴쓰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검도에는 ‘백련자득(百鍊自得)’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번 단련을 하면 스스로 깨달아 얻는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의 시라도 백번을 거듭해서 베껴쓰면 어떤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해서 허만하 시인과 송재학 시인의 시 중에서 모방하고 싶은 시를 골라서 베껴쓰기를 백번씩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송재학의 시, 「공중」, 「흰색와 분홍의 차이」, 「습탁」, 「명자나무 우체국」, 「겨울 저수지가 얼면서 울부짖는 소리는 군담소설과 다를 바 없다」를 96번 베껴썼습니다. 여기서도 물론 이순원 선생님이 말하듯이 한 행이 아니라 한 문장 단위로 베껴씁니다.
‘글쓰기는 수영과 똑같다. 동작과 자세에 관한 공식을 많이 배우고 외운다고 저절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물도 많이 먹고 허우적거리면서 물과 친해지면서 는다.’라고 안정효 작가가 말했습니다. 문장 수련에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베껴쓰기도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베껴쓰기의 효용을 신뢰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제 경험에도 한두 달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년 반 내지는 2년은 해야 비로소 무언가 자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기약도 없이 무료한 작업이지요.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지루한 반복이 무언가 성취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