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A4용지 한 장 쓰기
우선 질보다 양이다
우리 어릴 때는 작문 시간이 되면 가로 20자 세로 10자로 된 시뻘건 원고지에다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를 잘 하거나 좋아하는 아이들 같으면 친근감이 있겠지만 글쓰는 데 열등감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원고지가 하필이면 200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자, 300자, 500자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역시 이 200자 원고지는 기원이 일본이었습니다. 지금도 세로 쓰기를 하고 있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것을 한국이 그대로 들여왔습니다. 한글은 이제는 가로쓰기를 하니 가로로 쓴다는 것만 다릅니다.
200자 원고지 규격은 글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인쇄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200자 원고지를 세로로 돌려보면 문고판 소책자 한 페이지 분량이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출판사가 쉽게 정리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200자 원고지를 쓰다가 언젠가 흰 종이로 옮겨갔는데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컴퓨터가 나왔을 때는 프린터기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해서 개인이 사용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A4용지가 어쩌니 하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A4용지 한 장 분량은 대략 200자 원고지 9장이라고 합니다. 단행본 한 권을 내려면 A4용지 100장 정도라고 하니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900매 정도가 되겠습니다.
요즘은 책의 페이지의 용량을 200자 원고지보다는 A4용지로 셈하는 것 같습니다. A4용지는 보통 책의 두 페이지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A4용지 100장이라고 하면 책이 적어도 200페이지 이상이라는 계산이 됩니다.
제 기억에 처음에 A4용지를 이용하여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A4용지 한 장을 채우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조금 써내려가다 보면 더 쓸 것이 없었습니다. 제 손주들이 “할아버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10분 제한 글쓰기를, 주디 리브스는 15분 제한 글쓰기를 연습시켰습니다. 그걸 따라 하다 보면 저의 경우는 대개 15분 정도 쓰면 A4용지의 2/3를 채우고 A4용지 한 장을 다 쓰려면 대개 23분 내외로 걸렸습니다.
이 A4용지 한 장―200자 원고지라면 9장이겠지요―을 채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보자는 글쓰기의 질보다는 양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4용지 한 장을 채우면 책으로 보면 페이지가 앞으로 나갑니다. 아무리 좋은 글을 쓴다고 해도 A4용지 한 장을 채우지 못하면 책의 페이지가 진행이 안 됩니다.
당연히 그 다음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왜 A4용지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제일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으로는 유명한 글쓰기 선생님들이 말하는 이른바 ‘잘 쓰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물론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제 천박한 생각으로는 역시 자신이 쓰려는 제목 하의 글쓰기 재료가 모자라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재료를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평소 독서를 많이 해서 충분한 지식 내지는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자료 찾기가 편리해서 조그만 공을 들여도 글쓰기의 자료들을 많이 모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없이 그 자료만을 그저 나열해서는 읽는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이토 다카시는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에서 글의 구성력을 염두에 두라, 혹은 인용문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A4용지 한 장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프리라이팅이든지 주제를 정한 프리라이팅이든지 꾸준히 목표(A4용지 한 장 쓰기)를 정해놓고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운동선수라고 해도 지루한 단순 반복 동작을 쌓아야면 기초체력이 마련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