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대학 예과 2학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50년이 넘었습니다. 2001년 ‘포엠토피아’의 고 이기윤 교수님, 그 후로 이화은 선생님, 이순원 선생님, 박종현 선생님에게 수학하여 그나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다이닌 가타기리 선사는 그의 책 『침묵으로 돌아가라』에서 ‘그저 옴’과 ‘그저 감’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수용하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무언가 남에게 인정받는 글쓰기를 해보려고 나름 애를 썼습니다. 이제야 인생의 황혼녁에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손주에게 물려줄 물질적 유산도 변변히 없는 주제에 그나마 제게 있는 글쓰기의 ‘야마’를 전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은유 만들기 훈련이 4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서로 조그만 싱갱이가 없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하기를 정말 잘 했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2018년 1월에 시작한 ‘은유 훈련’을 돌이켜 보면, 과제를 주면 은유를 만들어내는 손주의 글을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이란 얼마나 순수하고 유연성이 있는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도 애들만큼 은유를 수준 높게 표현해 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손주가 이제 모든 글쓰기에서 능수능란하게 은유를 구사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산문을 쓰거나 시를 지으면 비록 아주 빼어난 은유는 아닐지라도 그들 자신도 모르게 은유가 몇 개씩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래도 헛된 수고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은유 만들기의 훈련을 몇 년 거친 후에 그들의 시나 산문에서 은유의 구사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손주의 글쓰기 훈련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은유 만들기 훈련의 결론은 종합명제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문장 하나를 완성하려면 우선 주어를 선택합니다. 이때 그저 별 생각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면 자연히 논리적인 분석명제의 문장이 됩니다. 반면에 은유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주어를 선택했다면 잠시 1,2초라도 멈추고 주어가 가진 속성이 아닌 동사를 가지고 문장을 완성해야 합니다. 결국 은유란 종합명제와 같은 논리입니다.
손주를 가르치려고 우쭐대다가 결과적으로 제가 더 은유나 시 쓰기에 대해서 공부한 셈이 되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저를 오히려 가르쳐 준 손주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이동섭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책이 이렇게 모양을 갖추고 빨리 나왔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님께서 제 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시고 알게 모르게 격려·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먼저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많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헤밍웨이는 재능이 있어야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고 있습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행복해지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행복해진다는 것이 무얼까요. 행복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말 그대로 행운으로 내게 주어지는 것인지 사실은 잘 모릅니다. 다만 비록 ‘삼류 가수’인 것을 이제 알았지만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정하려면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지난 세월 남에게 내세울 성과는 별로 없습니다. 남은 생애도 별 볼 일 없는 글쓰기와 씨루다가 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