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이와이 슌지

‘오겡키데스카'

by 현목

‘러브 레터’라는 말은 신문인지 혹은 책인지 어디선가 많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영화한 것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처음에는 일종의 순정 연애 영화 정도로 막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스토리도 잘 모르고 여자 주인공이 ‘오겡키데스카(お元気ですか)’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말만이 저의 머리 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어떤 책을 구입하려다가 『러브 레터』의 책 표지가 눈에 띄길래 도대체 그 ‘오겡키데스카’라는 대사가 어디쯤에서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연애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사랑의 치열함이라든가 서로 삼각 관계를 이루며 질투에 빠진 나머지 온갖 치정(癡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런 내용보다는 오히려 소설을 구성한 줄거리의 아이디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주인공인 와타나베 히로코와 사귀고 있던 애인인 후지이 이츠키(藤井樹)가 2년 전에 산에서 조난을 당해 사망했습니다. 이 둘이 애인 사이가 된 것도 기묘합니다. 사실은 후지이 이츠키의 친구인 아키바(秋葉)가 히로코를 눈독을 들여서 자신의 애인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츠키가 가로챈 셈이 되었습니다. 둘이는 친구이니까 그 일로 구질구질한 삼각 관계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산의 등반에서 이츠키와 아키바는 같이 동행했다가 이츠키만 죽고 아키바는 살아 돌아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사건 이후에 아키바는 히로코에 품은 연정을 고백하고 히로코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소설의 구성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후지이 이츠키를 동성동명의 여자와 남자 두 명으로 세운 것입니다. 히로코가 우연히 후지이 이츠키의 중학교 앨범에서 그의 주소를 보고는 장난 삼아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주소에서 진짜 답장이 온 것입니다. 후지이 이츠키의 중학교 시절의 동성동명의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그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히로코 사이에 편지가 오갑니다. 히로코는 이 둘 사이에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그 여자를 첫 사랑으로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궁금하여 이것 저것 물어봅니다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그런 것은 없다고 누누이 편지를 보내지만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분명히 이 여자를 은근히 좋아했다는 증거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극구 자신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자신도 자신이 모르게 연정을 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작가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 작가들은 이런 데 재주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오겡키데스카’는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더군요. 아키바는 어떻게 해서든 히로코가 죽은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미련을 해소시켜 보려고 자신들이 등산하다가 재난을 당한 그 산으로 같이 갑니다. 거기서 여자 주인공인 히로코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나ㆍ요? 저ㆍ는ㆍ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어ㆍ요! 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나ㆍ요? 저ㆍ는ㆍ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어ㆍ요! 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나ㆍ요? 저ㆍ는ㆍ잘ㆍ지ㆍ내ㆍ고ㆍ있ㆍ어ㆍ요!


여기가 어찌 보면 이 소설을 절정이고 작가가 히로코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죽은 후지이 이츠키와 아키바에 대한―을 노린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소설을 진행하면서 작가는 시점 처리를 독특하게 합니다.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나오는 장면은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고 와타나베 히로코의 경우는 삼인칭 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술술 잘 읽힙니다. 문장이 평이하고 복잡한 비유법을 별로 볼 수 없습니다. 대사도 많고 게다가 짧습니다. 문장이 주는 미묘한 맛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화려한 유화라기보다 담백한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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