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김탁환

“삶은 문장 속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사소하다.”

by 현목

이 작가와 특별한 인연은 없었습니다.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하는 책 소개에서 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천년 습작』, 『쉐이크』 그리고 이번에 『원고지』가 세 번째 읽은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작 그의 소설 작품은 읽은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쓰는 소설가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으나 이번에 『원고지』를 읽으면서 작은 감동을 느낍니다. 일기 형식이라서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수재형보다는 성실형을 좋아합니다.


대학도 우수한 S대학 국문과를 나왔습니다. 나이가 저보다는 20년 정도 뒤이라서 그런지 이른바 386 세대의 냄새가 납니다만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별로 골수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386 세대가 별로거든요. 저희들이나 우리들이나 해방되어 같은 국어책 가지고 공부했는데 그들은 민주주의의 성골처럼 구니 꼴사운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이 분과의 공통점을 찾자면, 그도 본가가 이북 평안북도―저는 함경남도입니다만―에서 피난 온 2세대라는 점이고, 또 처가가 진주라고 하니 저 또한 지금 진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동질감을 일으킬 수도 있겠습니다. 책의 한 구석에서 이 분의 모친이 교회에 나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권사 정도는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도 해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에 딱히 적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를 인용하여 설명하지만 여기서의 ‘진리’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진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문맥에서의 ‘진리’의 내용을 그냥 일반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아 성경에 그다지 정통하다고는 보지 못 하겠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비평으로 시작하였다가 소설가로 전향을 합니다. 초기에는 순수문학의 작품을 쓰다가 무슨 계기였는지는 몰라도 대중소설로 방향을 바꾼 것 같습니다. 대중소설이 순수문학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관심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별로 제게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나는 32년간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글쓰기에 할애해 왔다’는 말에는 유구무언이 되어버립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그의 성실함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 요약에는 잘 안 나오지만 책 원본에는 퇴고하는 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지 말도 못합니다. 몇 개월을 오직 퇴고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명 받은 문장을 세 개만 들어보겠습니다. “입을 닫아라! 그리고 작품으로, 문장으로, 단어로 말하라.” “집중 집중 또 집중할 것! 삶은 문장 속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사소하다.” “잡념을 버리고 문장 하나하나에 뛰어들 것. 이 안에서 행복을 찾을 것.”


과장되게 말하여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미리 말한 것처럼 보입니다. 문재가 없는 둔재이지만 저도 남은 인생을 좋은 문장을 만드는 데, 좋은 글을 쓰는데 저의 능력을, 열정을 쏟아 붓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집필실을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지만 부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오직 글쓰기만을 위한 공간, 그 속에서 오직 단어와 문장과 소설을 위해 사는 사람, 쓰고 쓰고 또 쓰고 잠이 오면 자고, 또 쓰고 배고프면 밥 먹고 또 쓰고 쓰고 또 씁니다. 이 모습을 보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바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 아닙니까? 자고 나서 눈 뜨고, 밥 먹고 오직 생각나는 것은 그 여자뿐입니다. 이런 열정을 32년 간이나 지속하였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닫혀지지 않습니다.


저에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을 느끼게 합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주는 말을 경구(警句)로 받아들여 가슴에 품고 가야 하겠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잊어버렸을 때 저를 일깨워줄 경구로 말입니다. 헤밍웨이의 말이 용기를 줄 것 같습니다.

“글이 형편없고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일 때도 그냥 계속해서 써나가야 하네. 소설을 다루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일세. 빌어먹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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