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매일 발생하는 작은 친절이나 기쁨 속에 있다'
나는 행복이라면 너무 큰 것을 바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처음부터 느꼈다. 행복하기를 바랐지만 언제나 나의 생활 속에서는 아쉬웠고 나와 행복이란 것은 별로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서 나의 생활 태도를 바꿔야겠다는 단서를 찾았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한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다시 말해 걱정 근심이 없는 상태가 하늘에서 벼락 같이 쏟아져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기를 우리는 원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느냐 하면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마이크 비킹은 덴마크 사람들이 유엔 자문 기구가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거의 항상 일등을 차지하는 이유를 ‘휘게’라는 데서 찾았다. 원래 휘게는 노르웨이어로서 단어의 뜻은 ‘웰빙’이라고 한다. 휘게를 영어로 번역하면 ’코지니스(coziness, 안락함)‘쯤 된다고 말했다. ‘휘게는 간소한 것, 그리고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휘게는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와 더 가깝다. 여러 면에서 휘게는 ‘느리고 단순한 삶’의 덴마크인 사촌이라고 할 수 있다. 휘게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랑받는 느낌, 따뜻함,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행복 연구자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분석할 때 어김없이 발견하는 특징은 그들이 좋은 대인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휘게하기에 좋은 인원은 세 명이나 네 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저자의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휘게를 하고 있다.
휘게를 이루기 위한 매개로서 비킹은 맛, 소리, 냄새, 질감, 시각, 육감을 들고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커피, 양초 벽난로, 음식, 담요 등이다.
내가 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자. 우선 아내와 고즈넉한 산사, 해변가, 펜션, 혹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같이 다니면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기질이 잘 맞고 서로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와 같이 저녁을 한끼 먹는 시간 약속을 마련하고 아니면 친구와 부인과 같이 시간을 가지면서 그것이 음식점일 수도, 카페일 수도, 재즈 바일 수도 음악회일 수도 전람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휘게를 하면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비킹은 ‘삶은 돈과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구축된다’라고 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이 행복한 상태를 상상해 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좋은 대학을 나오고 결혼도 재산이 있거나 명망이 있는 가문의 여자이면 더할 나위 없다. 물론 자신의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에도 건강으로 인한 걱정거리가 없다. 집도 몇십 평 이상의 최고급 아파트 혹은 저택이어야 하고 차는 말할 것도 없이 톱 클래스의 외제차를 구비해야 한다. 재산도 몇 십억 혹은 몇백 억대는 되어서 재산으로 시비를 거는 데는 ‘야코’ 죽일 일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최고급 호텔에 들고 해외 여행을 하더라도 서민들의 투어가 아니라 최상류의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한다. 먹고 싶은 때 돈에 부담을 전혀 가지기 않고 주위에 ‘기마이(気前/기마에)’도 풍성하다. 항상 어떤 회의 회장은 도맡아 놓고 한다. 이쯤 되면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이런 조건이 주어진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런 상태에서 행복을 얼마든지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비킹은 ’휘게의 순간에 삶은 이런 것돌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된다’ 라고 했다. 주위의 가족, 친구와 같이 안락한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도 최소한의 생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휘겔리(휘게의 형용사)하다는 것은 다분히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면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사는 삶이 분명히 그런 면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카버할 수 있을까? 아무리 휘게하려고 해도 삶의 현장에는 고통이 있고 불의의 사고도 오고 생각지 않은 질병에도 걸린다. 직장에서 쫓겨 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생존의 조건이 다 완벽하여서 그 다음에는 오직 휘게만을 생각하면서 아늑하고 평화롭고 단순하고 안정적인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데 몰두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덴마크는 특별히 그렇게 행동하는데 사회적 환경이 유리할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람의 사는 목적이 오직 휘게만이 목적일 수는 없다.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서 그는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휘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비킹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행복의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행복이나 삶의 질을 측정하고자 할 때는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삶의 만족도를 살펴본다. 둘째, 감정과 감각을 살펴본다.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감정이나 감각적 쾌락을 느끼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셋째, 행복주의적 측면을 살펴본다.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좋은 삶이란 의미 있는 삶을 뜻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 묻는다.’
비킹은 삶의 만족도, 감정이나 감각적 행복에 대해서는 휘게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려고 했다. 다시 말해 비킹이 말하는 휘게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측면에 국한된 느낌이 없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의미 있는 삶’에 대해서는 언급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각자가 더 많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휘게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포션을 차지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키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게는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나는 될 수 있으면 혼자서 나의 안락함을 취하려고 노력해 왔다. 책을 혼자서 읽고, 산책을 가거나 어딘가 가서 휴식을 해도 혼자 가고 싶어 했다. 겨우 아내와 동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행복은 어쩌다 한번 하늘에서 복이 통째로 내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은 셈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친근한 사람과 일부러 시간을 내고 장소를 고르고 휘게를 할 곳을 찾아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조금씩 휘게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침에 J시에서 S시로 자동차로 통근을 지난 9월부터 하게 되었다. 중간에 고속도로를 경유하게 되는데 그저 동기도 없이 속도를 올려서 꼭 시속 백 킬로미터를 넘어야 속이 시원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가는 짐차가 내 앞에 있으면 어김없이 속도를 올려 추월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는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될 수 있으면 추월하지 않고 차 속에서 바릴리 사중주단(Barylli Quartet)의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제4번 5번 6번을 들으면서 시속 팔십에서 구십으로 갔다. 바이올린 소리와 첼로 소리가 귀에 들렸다. 마음이 푸근하고 안정이 되었다. 누군가가 무례하게 끼어들기를 해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 덤으로 그 차 주인은 고맙다고 뒷비상등을 깜박여 주었다. 나는 이게 휘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아내와 언젠가 토요일 한번 시간을 내어서 군산의 일본인 가옥에 가서 일박을 하고 오기로 했다. 일본식 방에 가서 다다미 냄새를 맡고 우동과 튀김을 먹으면서 휘게를 할 요량이다.
이런 일상에서의 휘게를 이삭 줍듯이 주워서 쌓아가면 그게 행복한 인생으로 결산되는 한 방편은 아닐까. 결론 삼아 벤자민 프랭크린의 말을 인용해야겠다. ‘행복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작은 친절이나 기쁨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