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찰스 부코스키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토요일마다 신간을 소개하는 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는 왠지 그럴 듯한 것이 있을 것 같아 구입했습니다.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책표지의 안쪽에 있는 찰스 부코스키를 소개하는 글 중에 그의 묘비명에 적혀 있다는 말, ‘애쓰지 마라(Don’t Try)에 갑자기 그의 글이 더 읽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읽은 글 중에―소설 제목인지 주인공이 늘 하는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최선을 다하지 마라’라는 말이 같이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대부분 ‘최선을 다하라’가 통념입니다. 사실은 애쓰고 최선을 다하느라고 우리는 인생을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게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애쓰고 최선을 다한 사람 중 과연 몇 퍼센트나 성공했을까요? 모르긴 해도 1퍼센트 혹은 5퍼센트나 될까요? 그렇다고 하면 나머지 99퍼센트 혹은 95퍼센트의 인생은 무의미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코스키는 1920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미군이었고 어머니가 독일인으로서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9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전전한 직업을 보면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주유소 직원을 거쳤고 도살장 직원으로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다가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그마저 그만 두었습니다.
책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면 매부리 코에다가 딸기코까지 겸했습니다. 조금 벗겨진 이마에 반백의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고 구렛나루가 나 있고 입은 약간 돌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먹물을 많이 먹은 얼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의 전체 내용은 그가 가난하게 살면서 시를 잡지에 싣기 위해 잡지사의 편집인에게 쓴 서간문이 대부분입니다. 그는 인생의 전반기에는 얼마나 가난했던지 시 한편을 잡지에 싣고 겨우 5달러를 받아 집세를 내고 사는 처지였습니다. 인생이 후반기에 가면 그나마 유명해지고 집세를 걱정하지 않게 되고 평생 문단에서 아웃사이더로 돌던 그도 사망 직전에 정통 운문 잡지라고 생각되는 『포에트리』에 시 세 편을 싣고 ‘이제, 마침내 나도 당신들에게 합류하게 됐군요’라고 감회에 젖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낌이 있었습니다. 소설도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시인이었습니다. 글 곳곳에서 유머와 반어법을 발견했지만 그의 산문에는 기본적으로 시적 운율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늘어놓은 말에는 행간을 읽는 묘미가 있었고 특히 전반부는 전체적으로 산문시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부코스키는 가난한 가운데 경마장에 들락거렸고―돈이라 해봐야 푼돈이나 걸었던 것 같고―세 마리 고양이를 키우면서 매일 밤 싸구려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며 타자기를 새벽 두 시까지 두드렸습니다. 집세를 낼까 말까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 그의 목적은 글을 쓰고 다음 줄을 더 이어서 쓰는 것이었습니다.
욕도 자주합니다. 그는 비뇨기 계통에 친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떡친다, 오줌 눈다가 아니라 오줌을 싼다, 똥, 심지어는 정액을 찍 싼다는 말도 나오고, 자주 창녀 얘기도 나오고…… 보기에 따라서는 역겹게 느껴질 것도 같은데 적어도 그다지 저항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똥 냄새 오줌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참 그의 글을 읽다가 ‘아, 이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교양인들’ 같으면 마음 속에 말하고 싶은 거친 표현이 있어도 일단은 자제를 하는 게 통상의 행위인데 그는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너무 솔직하여 아닌 게 아니라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사는 것과 자신의 감정과 판단, 그리고 글쓰는 자체만이 살아 있습니다. 어떤 것에도 대해도 편견이나 타인을 의식한 가식이 없습니다. 유명한 T.S. 엘리엇이나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키츠…… 등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얼마든지 하대를 했습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는 자신에게 정직했다는 말이 됩니다.
나는 부코스키를 읽으며 갑자기 내가 너무 왜소하게 살아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죽음을,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죽음의 너머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믿는 신앙인이지만 막상 내가 생명의 절벽에 서 있을 때 과연 아무런 공포도 없이 담담히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이 늘고 자식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 이것저것 궁리하게 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그야말로 득도를 한 경지는 아닐지라도 뭔가 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와 담대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남과 비교하면서 시답지 않은 열등감에 젖어서 초라한 자신을 바라봅니다.
부코스키는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았고―꿈꿀 수도 없었겠지만―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쇼스타코비치, 브람스, 바흐를 들으면서―돈이 없어 그럴듯한 ‘오디오’가 아니라 라디오로―고양이를 키우면서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에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결코 작가로서 유명해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글쓰기를 동경하고 흠모하면서 살아온 사람인지라 그의 거칠고 어쩌면 천박할지도 모를 그의 글쓰기 인생이 내게 또 하나의 시사를 주는 것 같아 부코스키의 글이 머리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