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집중
탈렌트 김혜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하기사 이 말이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살면서 수도 없이 한 것일 테고 딱히 새로운 도를 트는 위대한 발견의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왜 이 문장이 마음에 걸릴까. 나도 이런 경지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런 관점을 가지기에는 부족하여 아쉽다는 생각일까.
김혜자는 정말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있는 것일까. 살아보니 별 것 아니다. 즉 nothing이더라는 결론인데 그렇다면 별 것 아니니 그저 닥치는 대로 살고 미련 가질 것도 없다는 뜻일까. 평생이라고 하면 적어도 나이 일흔 살 이상은 살았어야 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뒤 돌아보니 자신이 뭔가 이루려고―돈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을―머리 피 터지게 싸웠는데 이제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자기 나름의 각성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내일이면 칠순이 된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김혜자가 말한 “인생 별 거 아니예요”를 동경은 하지만 내가 30대, 4,50대에 가졌던 인생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아니 못한 정도가 아니라 강도만 조금 약해졌지 아직도 그 바닥에서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애욕과 재물과 건강과 남의 눈치를 보는 자신의 위신이라는 둘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내 생활의 환경은 달라졌지만 젊었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조카 되는 녀석이 대학 2학년이면서 아직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우물쭈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이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내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순간 나의 대학 생활이 생각났다. 이제 거의 70 평생을 살면서 자랑스러운 일보다는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일투성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 생활을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학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후회없이 모든 정열을 불태워 공부에 목숨을 걸리라고 스스로 다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정쩡한 성격이 첫사랑에 대해서도 고백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고 어리다고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이 그저 하루를 때우는 인생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로서 막연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나 욕정이 없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뭔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과단성 있게 나아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나의 머리를 때리는 것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자는 생각이라면 굳이 대학생활 때로만 한정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젊었을 때는 미숙하지만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지금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다. 밤을 새울 수 있는 체력이 젊음에는 있으니까. 하지만 한 곳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젊은 시절만이 아니라면 나의 지금의 현재라는 시각에서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운전하는 기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대로 머리로 사고하고 육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십 년, 길어야 십오 년 정도일 것이다. 내가 대학 생활을 후회하는 우를 이 남은 인생에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혜자의 “인생 별 거 아니예요”라는 심오한 오의에는 못미치더라도 나의 생활을 더욱 단순화시키고 정말 내가 남은 인생에 목숨을 걸만한 주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일까, 글쓰기일까,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검도 수련일까.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어떤 것일까. 문학적인 소양은 조금은 있을지 몰라도 역시 탁월한 면은 없는 것 같다. 나머지 분야도 대동소이하다. 그래도 나의 능력 안에서 나의 몫 안에서 집중하고 파고 들면서 내 인생을 마치고 싶다.
글을 쓰는 동안 뜬금없이 횃불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무슨 무명을 밝히는 위대한 존재가 된 양 들떠서 그런 단어를 지금의 나의 상황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은 횃불이라도 되어서 내가 앉은 자리나마 밝히다가 갔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본다. 과연 내가 한 곳에 집중하고. 목숨을 걸고, 불을 밝히고 홀로 외롭게 걸어가야 길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을 실천할 능력은 있을까. 안타깝지만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늠름하게 홀로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니 그런 생각이 이번이 마지막이고 나머지는 그저 뚜벅뚜벅 걸어나는 나의 모습을 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