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Oct 14. 2024

추분(秋分)

송주성

추분(秋分)                              

                                       송주성  



              

  아침에 마른 헝겊으로 바깥 큰 창을 닦자 손이 희어지고 야위고 가벼워졌

다. 햇살이 보이지 않던 얼룩을 비추었으나 바깥쪽은 아니었다. 다시 닦고

빨래의 젖은 주름과 안쪽 호주머니를 빳빳이 당기고 펴자 어느새 가늘어진

목이 붉어졌다. 더 이른 아침에는 멀리서 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

마 몸집이 작고 깃털이 아름다운 후투티나 호반새였을 것이다.     


  그 새가 날아오르기 조금 전, 네가 나의 꿈속에서 사라졌다. 너는 왜 출입국

사무소를 국제 공항을 놔두고 내 꿈속에서 떠났을까. 내 꿈속에는 밖으로 나

갈 문이 없는데. 다만 길 아닌 길로 가기에 누군가의 꿈속밖에 없었을 것, 사

람이 사람을 떠나기엔 그 사람의 꿈속밖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

다      


  정오가 다가오는 무렵 하늘에선 소리 없이 나그네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는 어느 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가슴을 보여주었지. 허기와 어지러움으로 

떨리는 손이 가슴뼈와 가슴뼈 사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닿던,

소나기 뒤 햇살이 쨍하고 반짝이는 물방울 흘러내리듯 촉촉이 영롱하던 잎

사귀 하나      


  한 보름 후면 창밖에 나무들 잎사귀들 떨굴 것이다. 나그네새들이 한참 후

에 돌아올 때 나는 맑게 비어 있는 잠 속에서 그들이 다시 오는 것을 내다봐

야겠다. 환한 한낮의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마룻바닥 위로 구르는 한 잎 한

잎 시간의 그림자들을 하얗게 말린다. 누가 내 손등을 서걱서걱 덮고, 마르

며 아직은 흐릿하게 빛나는 잎사귀 하나     



      

*추분(秋分): 이십사절기의 하나.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들며, 

해가 추분점에 이르러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 9월 23일경이다.


-----------------------------------------------------------------------------   

  

1 Analysis by  m&s     

----ⓜ(metaphor)  ----ⓢ(statement)   ----ⓢ’(simile)     

∙아침에 마른 헝겊으로 바깥 큰 창을 닦자 손이 희어지고 야위고 가벼워졌다. ----ⓢ

∙햇살이 보이지 않던 얼룩을 비추었으나 바깥쪽은 아니었다. ----ⓢ

∙다시 닦고 빨래의 젖은 주름과 안쪽 호주머니를 빳빳이 당기고 펴자 어느새 가늘어진 목이 붉어졌다. ----ⓢ

∙더 이른 아침에는 멀리서 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

∙아마 몸집이 작고 깃털이 아름다운 후투티나 호반새였을 것이다.----ⓢ     

∙그 새가 날아오르기 조금 전, 네가 나의 꿈속에서 사라졌다. ----ⓢ

∙너는 왜 출입국 사무소를 국제 공항을 놔두고 내 꿈속에서 떠났을까. ----ⓢ

∙내 꿈속에는 밖으로 나갈 문이 없는데. ----ⓢ

∙다만 길 아닌 길로 가기에 누군가의 꿈속밖에 없었을 것, 사람이 사람을 떠나기엔 그 사람의 꿈속밖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오가 다가오는 무렵 하늘에선 소리 없이 나그네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너는 어느 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가슴을 보여주었지. ----ⓢ

∙허기와 어지러움으로 떨리는 손이 가슴뼈와 가슴뼈 사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닿던, 소나기 뒤 햇살이 쨍하고 반짝이는 물방울 흘러내리듯 촉촉이 영롱하던 잎사귀 하나----ⓢ     

∙한 보름 후면 창밖에 나무들 잎사귀들 떨굴 것이다. ----ⓢ

∙나그네새들이 한참 후에 돌아올 때 나는 맑게 비어 있는 잠 속에서 그들이 다시 오는 것을 내다봐야겠다. ----ⓢ

∙환한 한낮의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마룻바닥 위로 구르는 한 잎 한 잎 시간의 그림자들을 하얗게 말린다. ----ⓜ

∙누가 내 손등을 서걱서걱 덮고, 마르며 아직은 흐릿하게 빛나는 잎사귀 하나 ----ⓢ     

----ⓜ(1)  ----ⓢ(15)   ----ⓢ’(0)     


3 Comment     


  앞의 시 세 편과 여기 ‘추분’의 시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이 보입니다. 하나는 전자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장의 마침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문시나 산문시도 마찬가지입니만 시인에 따라 마침표를 찍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저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 편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의 시 세 편에서는 메타포의 구사가 많았으나 여기는 진술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송주성 시인의 시풍이 확 바뀌는 느낌이어서 약간은 당황스럽습니다.


  여름의 맹렬한 생명의 활동이 추분이라는 절기를 분기점으로 소멸의 길로 들어갑니다. 인간도 30, 40대의 청년의 한창 성하던 시절도 50대가 되면서 가을로 접어듭니다. 이때는 누구나 나름의 생의 쓸쓸함이 몸으로 닥쳐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추분에 느끼는 서정을 이렇게 진술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추분에는 손이 희어지고 가벼워진다. 빨래의 목도 붉어진다. 후투티, 호반새도 날아오른다. 추분에 너 는  내 꿈속에서 사라졌다. 하늘에서 나그네 새들이 날아가고 너는 부푼 가슴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영롱한 잎사귀 하나 있었다. 보름 후면 잎사귀들 떨어질 것이다. 나그네 새들이 돌아온다. 햇살이 마루바닥 위에 구르는 한 잎 한 잎의 시간의 그림자를 말린다.     


  2연에서 뜬금없이 ‘너’가 나오는데 그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름 철새라는 후투티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옛날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짐작하면 너무 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