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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Oct 13. 2024

라투로아카잔 라투로아카잔 부르면서 말이지

라투로아카잔 라투로아카잔 부르면서 말이지                              

                                                                         송주성       



         

 밀폐된 유리병 속 묵은 빛 덩이 하나 굳고 녹고 다시 문드러져 병 안쪽에 들

러 붙고 겨울 햇살에 천천히 말라 산화하고 백색만 남고 들러붙었던 것 도로

말라 떨어지고 그러고도 또 차고 마른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더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무렵에, 굳게 잠긴 시간의 틈으로 풀

려나오는 한 줄기 하얗게 색바랜 향기의     


 백합 같은 얼굴은 이사 나간 말끔한 겨울 방일 거라고 해 두지, 텅 빈 방 벽

들은 아직 기억해 명치 부근 통증과 배고픔을 분간하지 못하던 젊은 남자의

기대어 흔들던 등, 며칠 뒤에는 나이 많은 여인이 또 와서 이마와 손바닥을

대고 숨을 터트리던 것을, 그러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새들이 함께 떠난 뒤 이제 아무 설렘 없는 공기가 마치 성자(聖者)처럼 와서

잠시 머물며 빈 바닥을 쓸어주고 벽을 안아주며, 골목에 그 많던 햇살들 암

막 커튼 뜯어낸 유리창 안으로 깊이 들어와 가만히 걸음 딛어보는 소리, 바

닥으로 흔들리는 옅은 그늘의 소리, 햇살이 햇살에게만 들려주는 그런 무렵

엔     


 이제 정말 곧 눈이 올 거야 키 작고 조용한 겨울 오후가 그렇게 다녀가고 하

나의 겨울은 모든 겨울이어서 오래 비어 있을 방과 벽은 내리는 눈을 보며

아무 요구가 없는 글을 이어 쓰겠지, 하얗게 하얗게, 아무도 모르는 밤이 와

서, 공익광고가 홀로 녹음된 음성으로 인간을 전부 위로하는 밤이 다시 와서

 라투로아카잔에게,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는 이름에게, 모든 없음의 이름,

뭐라고 불러도 좋을 이름에게, 라며 무어라고 쓰겠지 뭐든


 쓸 거야, 밤을 새워 실재의 폭설이 쏟아지고, 내리는 눈은 펑펑

 저편 어딘가에 눈 그치는 소리를 쓰겠지 펑펑

 눈 그치는 소리가 눈 그치는 소리를 건너 저편으로 갔다가 다시 눈 그치는

소리를 건너 여기 이렇게 눈 그치는 소리로 쏟아지고 있다고, 라투로아카잔,

라투로아카잔 이렇게 없는 것들의 이름으로 자기를 주문처럼 부르며 말이

지, 타오르는 백색 구멍으로 번쩍이는 아침이 온다고, 빈 방과 벽은 입꼬리

를 올려 광대뼈를 단단히 받친 인간들의 표정을 짐짓 흉내 내어 보이며 말이

지, 쓸 거야, 하얗게 펑펑     


-----------------------------------------------------------------------------     

1 Analysis by  m&s     

----ⓜ(metaphor)  ----ⓢ(statement)   ----ⓢ’(simile)     

∙밀폐된 유리병 속 묵은 빛 덩이 하나 굳고 녹고 다시 문드러져 ----ⓜ

∙병 안쪽에 들러 붙고 겨울 햇살에 천천히 말라 산화하고 백색만 남고 들러붙었던 것 도로

말라 떨어지고 ----ⓜ

∙그러고도 또 차고 마른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더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무렵에, 굳게 잠긴 시간의 틈으로 풀려나오는 한 줄기 하얗게 색바랜 향기의

----ⓜ     


∙백합 같은 얼굴은 이사 나간 말끔한 겨울 방일 거라고 해 두지, ----ⓢ’

∙텅 빈 방 벽들은 아직 기억해 ----ⓜ

∙명치 부근 통증과 배고픔을 분간하지 못하던 젊은 남자의 기대어 흔들던 등, ----ⓢ

∙며칠 뒤에는 나이 많은 여인이 또 와서 이마와 손바닥을 대고 숨을 터트리던 것을, 

∙그러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새들이 함께 떠난 뒤 ----ⓢ

∙이제 아무 설렘 없는 공기가 마치 성자(聖者)처럼 와서 잠시 머물며 빈 바닥을 쓸어주고 벽을 안아주며, ----ⓢ’

∙골목에 그 많던 햇살들 암막 커튼 뜯어낸 유리창 안으로 깊이 들어와 가만히 걸음 딛어보는 소리, ----ⓜ

∙바닥으로 흔들리는 옅은 그늘의 소리, 햇살이 햇살에게만 들려주는 그런 무렵엔----ⓜ  

   

∙이제 정말 곧 눈이 올 거야 ----ⓢ

∙키 작고 조용한 겨울 오후가 그렇게 다녀가고 ----ⓜ

∙하나의 겨울은 모든 겨울이어서 ----ⓢ

∙오래 비어 있을 방과 벽은 내리는 눈을 보며 아무 요구가 없는 글을 이어 쓰겠지, ----ⓜ

∙하얗게 하얗게, 아무도 모르는 밤이 와서, ----ⓢ

∙공익광고가 홀로 녹음된 음성으로 인간을 전부 위로하는 밤이 다시 와서 ----ⓢ

∙라투로아카잔에게,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는 이름에게, 모든 없음의 이름, 뭐라고 불러도 좋을 이름에게, 라며 무어라고 쓰겠지 뭐든----ⓢ


∙쓸 거야, ----ⓢ

∙밤을 새워 실재의 폭설이 쏟아지고, 내리는 눈은 펑펑 저편 어딘가에 눈 그치는 소리를 쓰겠지 펑펑----ⓜ

∙눈 그치는 소리가 눈 그치는 소리를 건너 저편으로 갔다가 다시 눈 그치는 소리를 건너 여기 이렇게 눈 그치는 소리로 쏟아지고 있다고, 라투로아카잔,----ⓢ

∙라투로아카잔 이렇게 없는 것들의 이름으로 자기를 주문처럼 부르며 말이지, ----ⓢ’

∙타오르는 백색 구멍으로 번쩍이는 아침이 온다고, ----ⓜ

∙빈 방과 벽은 입꼬리를 올려 광대뼈를 단단히 받친 인간들의 표정을 짐짓 흉내 내어 보이며 말이지, ----ⓜ

∙쓸 거야, 하얗게 펑펑---ⓢ          

----ⓜ(4)  ----ⓢ(10)   ----ⓢ’(3)     


2 Comment     


  이 시는 솔직히 말해 ‘화살에 대하여’보다 저에게는 어려웠습니다. 처음 읽고 나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메타포를 구사하면서, 그것도 이중 삼중으로 겹쳐놓으니 한 문장을 알아들으려면 신경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숲으로 된 성벽’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에서 북토크를 한다고 카톡이 왔습니다. 박준이란 시인이 강사입니다. 처음 보는 시인이라고 인터넷에서 그의 시를 찾아서 몇 편 읽어보았습니다. 송주성 시인과 대비가 되었습니다. 우열을 떠나서 말입니다. 그의 시는 살짝 일어나는 바람 같은 감성을 시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는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습니다. 송주성 시인의 시는 강풍 같습니다. 너무 세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요. 그의 시는 복잡한 실타래를 풀 듯이 풀어야 합니다. 그게 송주성 시인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호오(好惡)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1연(聯)에서 말하는 것은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밀폐된 유리병 속에 묵은 빛덩이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다음 거기서 한줄기 색바랜 향기가 풀려나왔습니다. 이게 1연은 나머지 2연, 3연, 4연과 연관이 잘 안 됩니다. 여기서 ‘밀폐된 유리병 속’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이걸 알면 좀 더 이 시의 이해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밀폐된 유리병 속은 텅 빈 방을 뜻하는 것이 아닐른지, 혹은 마음을 뜻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왜 거기 묵은 빛덩이가 있다는 말이지요? 이게 어떻게 눈 내리는 것과 글을 쓰는 것과 연관이 될까요? 


  2연은 텅 빈 방의 풍경을 ‘남자가 흔들던 등, 여인이 숨 터트린 것, 공기가 안아 준 벽, 햇살이 걷는 소리, 그늘 소리’를 가지고 그리고 있습니다.


  3연은 겨울에 눈이 오면 방과 벽은 라쿠로아카잔에게, 평범하고, 이름도 없는 이름에게 뭐든 쓸 것이라고 합니다.


  4연은 빈 방과 벽은 입꼬리를 올리고 쓸 것이라고 합니다. 눈 그치는 소리를 쓸 것이다. 없는 것들의 이름을 부를 거다. 타오르는 백색 구멍으로 아침이 온다고 쓸 것이다. 라쿠로아카잔아.


  텅 빈 방에 촛불이라는 빛덩이가 불이 켜지면서 향기가 풀어져 나오면서 그 텅 빈 방안에서 누군가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닐까요. 남자가 등을 흔들고, 여인이 숨 터트리고, 공기가 벽을 안아주고, 햇살이 걷는 소리가 들리고, 그늘 소리가 나던 그 무렵에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방과 벽은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라쿠로아카잔에게, 평범하고, 이름도 없는 이름에게 뭐든 쓸 것이라고 합니다. 빈 방과 벽은 입꼬리를 올리고 쓸 것입니다. 눈 그치는 소리를 쓸 것입니다. 없는 것들의 이름을 부를 겁니다. 타오르는 백색 구멍으로 아침이 온다고 쓸 것입니다. 라쿠로아카잔아.


  어렵사리, 힘들게 이 정도의 이해까지 도달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시작 감상의 한계 같습니다. 송주성 시인의 깊이에 조금은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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