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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Dec 20. 2024

글쓰기는 상상(想像)이다

  상상하다는 ‘현실에서 있지 않은 것 혹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머리 속에 그려 생각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imagine입니다. 물론 모든 글쓰기가 상상에 기초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글쓰는 이의 성향(性向)이고 선택일 뿐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수필집을 읽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글쓰기는 세 가지 요건이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는 진정성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거짓이 없고 순수해야 합니다. 잘 쓰려고 없는 사실을 까발린다든지 술수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동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기교가 필요합니다. 모든 예술이 나름의 기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타포’도 일종의 기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저녁에 ‘한경 Arte’에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에서 32번까지 연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찾아보니 2019년 9월 27일 독일 뮌헨의 Herkules 홀에서 열렸던 연주였습니다. 폴리니는 1942년 출생하여 올해 2024년 3월에 82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더 언급할 것도 없지만 조금 특이한 것은 유명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처럼 공산당원이었다고 하니 의외였습니다.


  연주회 모습을 글로 쓴다면 대개는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진술로 이루어지고 분석명제의 문장입니다. 물론 이렇게 써서는 수준 이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문장을 자신이 기술하는 도구로 사용할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글쓰는 이의 마음입니다.     


  넓은 연주회장에 청중은 모래알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일층과 이층 청중석을 가르는 눈부신 형광 불빛이 공중을 ㄱ자로 가르고 있다. 무대에 홀로 앉아 있는 폴리니가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골돌히 쳐다보면서 무아지경으로 손가락을 두들기고 있다.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청중들 머리 위로 날아가자 콘서트 홀은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다. 폴리니의 얼굴의 주름살이 아래로 축 늘어져 있다. 무대의 빈 공간에 피아노만 댕그러니 있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사태를 보고 글을 쓸 때 상상한다는 것은 몸에 배지 않은 이상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쓰자고 하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자연스럽게 진술의 문장이 쏟아집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상상하기가 몸에 익숙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그런 버릇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중이 모래알로 차 있다. 숨소리는 모래알 속에 숨어 있다. 일층과 이층의 청중석을 가르는 형광 불빛이 수평선이다. 영원을 가리키는. 폴리니의 눈동자는 어딘가 흘러가면서 그의 늙은 손가락은 희고 검은 파도를 두드린다. 음계의 소리는 베토벤이 들려주고 싶은 파도 소리였을까. 폴리니 얼굴에 세로로 늘어진 주름살이 아래로 금방 떨어질 것 같다. 환희가 아니라 살아온 고뇌가 피아노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떨리는 손가락은 이성 너머 형상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폴리니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생의 장송곡을 스스로 치고 있다. 어딘가 아픈 몸, 눈을 감고, 입을 반쯤 벌리고 그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피아노는 폴리니에게 외로운 섬의 위안이다.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은 그대로 우리의 머리에 명료하게 들어옵니다. 이것은 이것대로의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상하는 문장은 애매모호합니다. 예컨대 고흐의 그림은 선을, 물감을 명확하게 칠하지 않습니다. 모호하므로 보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것이 상상하는 문장이 가지는 이로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보면 “자, 이제부터 상상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격려를 하면서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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