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쭙잖게 시를 써오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메타포‘에 홀려서 책도 사서 보고 저나름으로 연습도 해보았습니다. 글쓰기에서 메타포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다라고 동의는 하면서도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메타포다”라는 말에 의지가 됐습니다. 세잔의 그림, 이수동의 그림을 가지고 제 방식으로 메타포 만들기도 해봤습니다. 손주들에게 메타포 연습을 시킨 7년간의 글들을 모아 『의사 할배가 들려주는 조금 다른 글쓰기』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글을 쓰면서 상상력과 이미지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글이 되려고 노력은 했으나 워낙 소양(素養)이 부족한지라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어떤 책에서 가스통 바슐라르를 언급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상상력과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제시한 철학자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2023년 10월에 집에 있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 『촛불의 미학』을 읽고 독후감도 썼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그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상상력과 이미지에 대해 바슐라르가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어 현재 출판된 그의 모든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메타포란 상상력과 이미지의 산물이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자마자 바로 막혀버렸습니다.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과 『몽상의 시학』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바슐라르의 상상력에 대한 해설서 같은 홍명희 교수의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를 읽었습니다. 2005년에 초판 발간된 94페이지의 소책자입니다. 2022년에 8쇄라고 나옵니다. 사람들이 제법 읽은 책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제 실력으로는 이해하기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 번 읽고 다음에 요약하여 정리하고 그 다음에 다시 읽어서 정리해 보니 그제서야 뭔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우선 가스통 바슐라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분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그의 삶의 이력조차 마음 속에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1884년에 태어나서 1962년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구두수선공이었고 아버지도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바슐라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입학자격고사에 합격했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 가는 대신 그는 인근 중학교의 복습교사로, 그후 우체국에 근무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습니다. 독학으로 대학학사 자격증을 따고 중학교의 물리·화학 교사가 됩니다. 결혼했던 아내 잔느는 딸을 낳고 7개월만에 죽습니다. 바슐라르는 딸 쉬잔을 혼자 기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1930년 그러니까 46세에 디종 문과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됩니다. 굳이 그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것은 그의 철학적 탁월성도 훌륭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험한 인생길 헤쳐나가는 그의 용기와 성실함에 존경이 가기 때문입니다.
첫째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력과 이미지의 탄생의 배경을 살펴보고 그의 독특한 지론인 상상력과 이미지의 4원소를 알아보겠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상력과 이미지는 그때까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성은 형식논리가 있는데 상상력과 이미지는 논리적이기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상력과 이미지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 능력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바슐라르는 원래 문학가가 아닙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과학철학자였습니다. 바슐라르가 과학철학에서 상상력과 이미지로 연구 방향을 전환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인식론의 방해물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자 인식론의 방해물은 바로 상상력과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슐라르는 인간의 내면에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에 있어서 상상력과 이미지는 주관적 가체체계―인식은 객관적 가치체계이지만―이고 이 주관적 가치체계가 인간정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깨달았습니다. 그 후 이것은 20여 년간 바슐라르의 주된 학술적 대상이 된 것입니다.
둘째 바슐라르가 왜 이미지에는 4원소가 있다고 했는지 보아야겠습니다. 바슐라르가 이미지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이미지 대상의 물질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을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흙으로 된 육면체 상자가 있다면 육면체라는 형태의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육면체의 물질인 진흙으로 이미지를 상상합니다. 예를 들어 촉촉한 진흙의 촉감과 어릴 때의 아련한 추억을 연결시켜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이미지를 ’물질적 이미지’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지 대상을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물질에 착안하여 상상하는 것입니다. 형태적 이미지는 감각적 이미지이고 또한 감각의 오감(五感) 중에 시각이 가장 주된 감각이기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라고 합니다. ‘물질적 이미지’는 ‘정신적 이미지’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생각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뒤에 다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물질적 이미지’ 즉 ‘정신적 이미지’는 메타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슐라르가 메타포를 모를 리도 없고 그가 메타포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데 제가 감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저어(齟齬)합니다.
바슐라르는 이미지가 물질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원천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소위 이미지의 4원소론의 근거가 이야기가 됩니다.
바슐라르의 책을 읽다 보면 ‘몽상(夢想)’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몽상이란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꿈속의 생각이나 실현 가능성이 적은 헛된 상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정신활동을 보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색은 명료한 의식으로 이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하는 정신활동입니다. 둘은, 밤에 꾸는 꿈은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입니다. 거기에는 자아가 없습니다. 셋은, 몽상은 의지 없이 상상력에 의한 정신활동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지평 가운데서 깨어 있으면서 꾸는 꿈입니다. 거기에는 자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능은 비현실적입니다.
바슐라르는 이 몽상이야말로 인간의 정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시인이야말로 ‘몽상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말하는 것들은 제정신으로 보면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바슐라르는 이미지의 현상학을 말합니다.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 『물과 꿈』 『공기와 꿈』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을 통해 물질적 이미지의 4원소론을 기반으로 해서 이미지를 분류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을 쓰면서 후설의 현상학을 상상력과 이미지에 도입합니다.
후설의 현상학이란 사물이나 대상이 우리의 의식에 어떻게 나타나서 인식되는가를 분석하는 철학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필‘이라는 대상을 봤을 때 그 인식이 어떻게 성립되는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바슐라르는 우리의 의식에 상상과 이미지가 떠오를 때 그 의식이 어떻게 되는가를 연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상상하는 동안 상상하는 주체의 의식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바슐라르는 상상력과 이미지의 문제에 의식문제를 결합시켰습니다.
이미지는 원칙적으로 의식 현상이고 그것은 주관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지의 4원소론에서 의식은 무의식이라고 바슐라르는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현상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나서부터는 상상력과 이미지를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상상력에서의 현상학을 시적 이미지를 창조할 때의 의식 문제를 갖고 연구했습니다. 시적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의 의식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식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즉 합리성의 의식이나 인식 작용으로서의 의식이 아닙니다. 현상학에서 보면 의식은 존재의 한 형태입니다. 존재는 의식을 통해서 인식 작용의 주체가 되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나 바슐라르가 말하는 상상력과 이미지 때의 의식은 이런 일반적 의식이 아니라 특수한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후설이 말하는 주체의 의식 작용이 아닙니다. 바슐라르의 의식은 사색할 때처럼 명확한 것도 아니고 무의식도 아닙니다. 무의식과 현상학적 의식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비현실세계에 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확한 존재 의식이 아닙니다.
바슐라르의 의식은 존재가 형성되기 직전의 영혼의 상태라고까지 말합니다. 시적 몽상을 유발하는 의식으로서 기존의 철학적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의식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꿈과 몽상은 다릅니다. 꿈은 무의식의 활동에 속하고 몽상은 생각하는 의식에 속합니다. 몽상은 상상력의 장소입니다. 몽상의 의식은 시적 이미지를 창조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몽상하는 사람입니다. 몽상가의 코기토(데카르트의 생각)는 상상하는 의식입니다. 그것이 언어와 연결될 때 몽상가의 코기토는 시를 창조합니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시인은 시적 몽상을 소유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넷째 이미지의 정의와 종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미지란 인간의 정신활동의 한가지 특수한 현상입니다. 이미지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해내는 것입니다.
이미지를 분류한다면 인간의 감각기관과 연관이 있는 이미지, 즉 감각적 이미지와 인간의 의식활동으로서의 이미지, 즉 정신적 이미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감각적 이미지는 우리 몸의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이미지 형성에 참여합니다. 감각적 이미지는 몸의 경험이 바탕이 되므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감각적 이미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각적 이미지입니다. 왜냐하면 감각들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보편적인 것이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비정형 상태로 활동하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정신적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정신적 이미지는 비정형적 가치체계이며 구체적인 실체가 아닙니다.이 정신적 이미지는 바슐라르가 가장 역설하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메를로 퐁티는 언어 없이는 인간의 사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상상력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언어에 선행하는 의식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지각과정, 둘은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는 사고과정, 셋은 저축된 정보를 되살리는 기억과정입니다. 상상력은 이 세 가지 정신활동에 모두 작용하는 원동력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활동은 상상력과 이미지를 통해서 지각이나 사고, 기억의 과정을 거친 후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지는 인간의 정신활동의 기본요소이고 가장 원초적이고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현대사회의 이미지의 탄생과 그 역할, 폐해와 전망을 보겠습니다. 현대인은 자발적인 상상력 상상력의 활동에 의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외부에서 주어진 인공적인 이미지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티비나 신문광고를 보면 대사보다는 이미지로 소비자의 눈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지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뚜렷이 구별된다는 점입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이미지 생산자가 있고 대중들의 일상생활 속에는 대량시스템 속에서 이미지를 대량생산하는 생산자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무조건 수용하고 대신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대량생산되는 이미지들은 보편적 인류학의 상징적 유산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비디오 문화의 부작용은 심각합니다. 이미지 소비자를 수동적으로 만들어 개인의 창조적 상상력을 마비시킵니다. 나아가서 일상생활의 모든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의 감각자체가 마비되어 갑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는 2005년이니까 아직 AI에 대한 없던 때였습니다만 요즘 더욱 심각한 것은 개인의 상상력에게까지 현대의 기술력이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AI가 시를 쓰고 소설을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개인의 상상력과 이미지는 어떻게 되는 건지 전망이 막막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슐라르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한 사람이었고 그는 20세기의 코페르니쿠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성으로 기반한 서구의 객관적 과학의 세계에서 이미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상상력이 우위에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상상력과 이미지의 골자로 4원소를 주장했고 나아가서 후설의 현상학을 도입하여 상상력과 이미지 때의 의식은 이성적, 인식적 의식이 아니라 몽상이라는 특수한 의식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이미지에 대해 언급했으나 이 부분은 바슐라르가 직접적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사회를 생각할 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 글은 독후감이라 썼으나 솔직히 말해 독후감으로서 저의 관점이 거의 없습니다. 내용이 쉽지 않아서 이해하기도 바뻐서 저자 홍명희 교수의 글을 거의 요약한 셈이고 거기다가 약간 저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라는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