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감에 대한 근거
비트겐슈타인이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고 하여 그의 철학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명철한 철학자로서 그의 종교에 대한 생각이 흥미가 있어 그의 책을 두어 권을 읽었지만 딱히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자꾸 의문이 들어 끌려갔고 마침내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903페이지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이라 더욱 읽고 싶은 점도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느낌이 몇 가지 떠올랐습니다.
첫째 그는 정말 ‘무자비한 정직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젊었을 때 자위를 한 것을 일기 적어 놓았고 동성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것인데도 심각하게 자기가 잘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인상이 첫머리에서부터 느껴져 왔습니다.
둘째 그는 천재적인 철학자라고 합니다. 29세에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했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러셀이 그의 천재성을 처음 발견하고 그를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류의 철학 교수들이 비트겐슈타인이 무슨 말하는가 하고 긴장하고 쳐다보았고 그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을 가지고 자신들이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그의 철학에 대해서 『비트겐슈타인 평전』에서 문법 명제니 경험 명제니, 원자 명제, 복합 명제, 그림 이론, 모습-보기,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로 제시하지만 저로서는 이해가 역부족이어서 더 이상 파고들려고 하는 의욕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셋째 그의 집안은 유대인으로서 아버지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오스트리아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재벌이었습니다. 철강왕 석탄왕이라고 해서 그의 집에는 음악가 브람스, 클라라 슈만,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화가 클림트 같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다고 합니다. 그가 30세 때―그러니까 1919년 쯤 되나 봅니다―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지만 그는 전 재산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모르긴 해도 거대한 재산일 텐데 말입니다. 그는 나중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되어 월급이나 연구비로 나온 돈으로 생계를 꾸려 갑니다.
넷째 그는 일관된 생활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신체검사상 가지 않아도 되는데 일차세계대전에 참전을 합니다. 그것도 사실은 국가를 위해서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위해서입니다. 나중에는 훈장까지 받습니다. 교수가 되고서도 그만 두고 오스트리아로 와서 초등학교 교사, 정원사를 하다가 다시 교수를 하고 노르웨이에 가서 휴식하고 다시 돌아와 교수가 되어서는 마침 이차세계대전이 나자 그는 참전하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니 병원 약국의 배달 사원이 되고 나중에는 의사들의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합니다. 그냥 안락하게 교수 생활만을 영위해도 될 것 같은데 그의 성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고 하니 참으로 그의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다섯째 그는 철학적으로는 누구보다도 탁월했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마르그리트 레스핑거라는 젊은 스위스 여성을 사랑하였고 결혼 직전까지 갔습니다. 한 2년 사귄 것 같고 나이 차이는 스무살 정도 됩니다. 그때 비트겐슈타인의 나이가 42세쯤 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평범한 여성을 좋아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르그리트는 보통의 남자를 원했기에 비트겐슈타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합니다.
이런 여자와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에게 따라다니는 동성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사랑한 남자는 62세에 죽을 때까지 네 명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핀센트, 프랜시스 스키너(이 사람과는 적어도 2년간은 동거한 걸로 나옵니다), 키스 커크, 벤 리처즈(이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연인이었지요)가 그 사람들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동성애를 보면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학자라면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것도 보통 철학자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 보는 천재적 철학자인데 그런 그가 사랑, 그것도 동성애에서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곤혹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틀리라는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 서른 살부터 마흔 살 사이에 난잡한 동성애를 했다는 책을 썼습니다. 취재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증거는 대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레이 몽크는 완곡하게 그것을 부인합니다. 저도 전체적으로는 그런 난잡한 동성애보다는 오히려 플라토닉 러브 같은 동성애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난잡한 동성애를 하면서 동시에 철학적 사색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 종교적으로 애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를 인정하는 듯하지만 그는 정작 기독교도는 아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은 특이합니다. 대개의 유대인은 자부심을 갖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비트겐슈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유대교가 아니라 천주교 내지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만일 너와 내가 종교적 삶을 살아가려 한다면 종교에 대해 많이 말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태도가 달라야 할 것이라고 그는 드루어리에게 말한 바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이런 걸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비트겐슈타인은 어쩌면 저처럼 기독교 신앙에 한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나는 종교 신자는 아니지만 모든 문제를 종교적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특정한 종교의 교리를 믿은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믿은 것입니다. 이런 맥락이라면 어쩌면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혜는 차갑고 우둔하다. 지혜에는 열정이 없다 그러나 신앙은 열정이다.” 이 말은 키르케고르도 했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종교에서 철학은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종교에서 논리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를 러셀―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도 썼습니다―은 비트겐슈타인을 신비주의자라고 하면서 그를 비웃었습니다. 왜냐 하면 신비주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인생의 방향을 이해하는 열쇠는 원시적 삶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삶을 너무 이론적이고 너무 현명하다고 느끼게 하는 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죽었다고 느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하는 의문은 사실은 제 마음 속에도 오래 잠재해 왔던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빅뱅 이론이든 무엇이든 어쨌든 우연히 이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말은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무조건 성경의 사실이 저의 이성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이 당연히 진리라고 생각하려고 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믿으려고 애썼던 것은 사실입니다. 요즈음에 와서는 제 생각이 비록 못미친다고 해도 제가 납득할 수 있는 한에서 납득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어쩌면 히브리 민족이 생각했던 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을 통하여 인류에게 계시하려고 했다는 말입니다만 결국은 그 말이 그 말 같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적인 시각에서 쓰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단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선한 마음과 행동을 했어도―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의 세계로 떨어뜨린다는 것은 제 생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영원한 행복의 장소로 간다는 것도 썩 마음으로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종교적 행위는 인류가 거의 공통적입니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상적인 행동을 모범적으로 보인 사례는 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은 결국 자신의 이기적 동기의 발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자신의 육신과 정신의 ‘아무 탈 없는 편안함’을 갖기 위해서 온갖 종교적 행위를 합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사후의 자신의 복락을 위해 무언가 그럴 듯한 가상의 설정을 해놓은 것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의 99퍼센트는 자기 자신의 안녕과 영원한 평안을 위한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육신이 아니고 정신(영혼)이라도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60세 때부터 종교적 주제에 관해 대화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때가 아마 그의 사인이 된 전립선암에 걸렸을 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백퍼센트 ‘히브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히브리적 종교관은 성경 전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경외감에 근거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것에 관해 쓰여진 모든 철학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면서 더 철학적인 요한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믿음을 철학적 논증으로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완전히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그는 바울의 예정설을 부인합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어떻게 인생의 진지함을 구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표합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기독교의 핵심을 비트겐슈타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말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sense of awe)과 하나님에 대한 영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빛나고 아름다운 존엄이나 품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인용했습니다. “바흐는 그의 『오르간 소책자』의 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가장 높은 신의 영광을 위하여, 내 이웃이 그에 의해 혜택을 받기를.’ 그것이 내가 내 연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도 저의 기독교의 믿음의 근간이 있다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다시 말해 비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에 대한 열정만이 그 논리의 근거가 됩니다. 요 몇 년간 저는 신앙적으로 회의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이 저에게 그 회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빛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열정(passion)이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딱히 철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에의 의욕이요 진지함과 애정입니다. 하나님을 살아 있는 대상으로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대하며 살아갑니다.
경외(sense of awe)는 공경과 두려움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이 우주와 나 자신을 지으신 조물주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그것을 리얼하게 느낀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하나님에 대해 경외의 감정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럴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연히 그분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외는 생각보다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앞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 세상의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의 청와대에 초청받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목욕재계하고 입은 옷에 혹시 먼지라도 묻지 않았는지 신경 쓰면서 긴장하고 엄숙하면서도 두려움에 권력자 앞에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그럴까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glory of God)은 빛나고 아름다운 존엄과 품위를 말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겸손이며 나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으로 됩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의 모든 행위에 비탄이나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지함이고 성실함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나의 현재의 삶에는 오직 자족과 감사와 찬양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자그마한 결과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영광, 그리고 열정만이 현재 나의 살아감에 대한 근거가 되며 나의 운명에 대한 자족과 감사와 순종과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이제부터 당장 이런 경지로 접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수도승이 수도하듯이 하루하루 참고 견디면서 스스로 몸으로 깨달아 가야 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는 동안 수도 없이 실망과 좌절을 겪어야 합니다. 어쩌면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런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묵묵히 그 길을 가야합니다. 그것이 피조물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