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On The Move)』 올리버 색스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by 현목

우선 책 제목부터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매우 분주하여, 이리저리 이동하여, 전진 중인’ 등의 뜻을 보여줍니다. 역자가 구태어 번역을 하지 않고 영어 제목 그대로 쓴 이유를 잘은 모르겠습니다.


이 독후감은 저로서는 기념비적인 셈입니다. 이제까지 저의 책을 읽는 습관을 보면, 우선 읽은 그것으로 족하고 달리 관심을 가지지 않는 책, 줄을 쳐놓고 좀 아깝지만 바쁘기도 하여 그냥 놓아 두는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게는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읽은 책을 다시 A4용지에 요지를 요약하고 다시 머리에 정리하여 독후감을 써내려가는 세 가지였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좋기는 하지만 대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는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가바사와 시온(樺沢紫苑)이라는 분은 『암기하지 않는 기억력』에서 책을 다 읽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거침없이 그대로 ‘마구쓰기’의 독후감을 권하였습니다. 저도 그 방법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나탈리 골드버그가 주장한 것이 바로 ‘마구쓰기’ 즉 Free Writing이었습니다. 프리라이팅의 3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라. 둘째 거침없이 쉬지 말고 써라. 만약에 생각이 안 나서 끊기게 되면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차라리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라고 공책에 써라. 셋째 정한 시간, 예를 들어 십 분이 되면 무조건 연필을 놓아라. 이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것이 생각나서 이 ‘마구쓰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영국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1933년에 태어나서 2015년에 사망합니다. 집안도 좋습니다. 부모가 다 의사이고 위로 두 형이 모두 의사로 지냈고 제일 큰형은 조현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때인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킵니다. 아버지는 그런대로 이해하는 편이었으나 독실한 유대교 신자인 어머니는 너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거의 저주의 말을 하고 냉대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화해하기는 합니다만. 그 때문에 올리버 색스는 사실 동성애에 대해 솔직하기는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 죄책감을 평생 가집니다. 그런 탓인지 그는 영국에서 의대를 졸업하자 미국으로 건너가서 신경내과 의사로 일생을 마칩니다. 그는 임상의사이지 신경내과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저는 참으로 저의 롤모델로도 삼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솔직히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자 왠지 마음에 걸려서 그에게 잘 다가가지지 않는 게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세 명인가 애인을 두고 우여곡절 끝에 헤어지고 삼대 후반부터 거의 40년간은 동성애자 행세를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단히 솔직하고 정직하여 자신의 성정체성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그 동안은 성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75살이 되어 거의 50살에 가까운 빌 헤이스라는 작가와 동성애를 죽을 때까지 유지합니다. 제 생각에는 좋게 보아 동성애자로서 젊어서처럼 육체적 쾌락을 탐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의 관계에 있지 않았나 하고 희망적인 바램을 가집니다.


그는 임상의사로서 단지 약을 주고 병의 상태를 치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경학자들과 교감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의 교우 관계는 신경 생리학자들―그들 중에는 노벨상을 탄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과의 교분도 상당했습니다. 특히 그는 환자의 상태를 잘 관찰하여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깨어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편두통』 등이 있습니다. 책을 쓰면서 출판하기 전의 원고를 자신의 지인들에게 보내어 칭찬을 받아 용기를 얻기도 하고 권고를 받아 다시 수정하기도 하는 것이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가 망막의 흑색종이 전이 되어 죽기 바로 직전에 쓴 네 편의 수필을 모은 『고맙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담담히 반추하는 모습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뇌와 의식의 재발견’이란 챕터에 나오는 내용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뇌에서 생성되는 기전을 설명하는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식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스냅 사진이 연속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는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신경과학자는 그것이 2030년이 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그때까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프랜시스 크릭과 올리버 색스의 교우가 눈을 끌었습니다. 그는 원래 물리학자였다가 나중에 생물학을 전공하여 84세로 2004년에 사망합니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염색체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했지요. 색스보다 17년 연상인데도 색스의 저작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줍니다. 그의 학문에 대한 자세와 인간의 존엄, 품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이 올리버 색스를 주목하는 것은 그의 글쓰기입니다. 이 책 『온 더 무브』에도 사진이 나옵니다만 그는 길가다가 사람이 지나가는 것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씁니다. 혹은 자동차의 지붕에다가 종이를 놓고 연필인지 만년필인지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그냥 메모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신경의학적인 학구적 관심과 그것에 천착하는 그의 진지함 열정도 좋습니다만 저로서는 이 책의 마지막에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적어놓은 부분을 읽으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고 저 또한 올리버 색스만큼은 감히 못하더라도 흉내라도 내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글쓰기는 세끼 밥을 먹듯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는 열네 살 때부터 쓴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고 했습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는 수영장, 호숫가 해변 어디서든지 글을 썼다고 합니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글귀가 나오면 색종이에 쓰거나 타이핑하여 게시판에 압정으로 꽂아두기를 다반사로 했습니다. 그는 편지를 쓰기를 좋아했고 받은 것을 보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보내는 편지도 사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한 것은 자신이 환자 1000명을 진료하면서 수십 년 동안 임상일지를 써서 그것이 공책으로 1000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저도 부산의 요양병원에 있을 때 이와 비슷한 것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냥 용두사미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리버 색스의 말을 인용해야겠습니다. 그 말은 어쩌면 제가 동경해온 세계였는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는 잘 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 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 간다. 그러다가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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