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1

손주 가르치다 내가 배우다

by 현목

『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

은유는 몽상하는 촛불이다


1 프롤로그


글쓰기에 대한 책은 너무나도 많을 것입니다. 그것도 유명하고 훌륭한 책들이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문학에 전문가도 아닌 제가 굳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길게는 7년, 짧게는 4년 넘게 손주들과 글쓰기 연습을 한 것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글쓰기의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의 한 분야인 ‘은유’에 집중해온 것이 커다란 동기가 되었습니다.


책을 쓰겠다고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제 손주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쓰고 있다는 것을 제 눈으로 발견합니다. 또 하나는 손주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제 생각이 정리가 되고 확실해졌다는 커다란 수확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손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지금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작문 시간에 은유를 사용한 글쓰기를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놀라면서 “너, 이것, 너의 엄마가 써줬지?”하고 다그치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는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바로 이게 메타포란다.”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선 시작하기 전에 밝혀두고 싶은 것은 글쓰기에는 문학적 글쓰기와 논리적 글쓰기가 있습니다. 전자는 시와 소설과 희곡 또는 수필이 속합니다. 후자는 실용서, 자기계발서, 과학서 등이 있습니다. 논리적 글쓰기는 상상이 필요하지 않고 글의 내용이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되는 진술로 충분합니다. 반면에 문학적 글쓰기에는 상상이 필요한 묘사가 요구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수사법을 필요로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은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은유야말로 상상과 발견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선호이지 이 길만이 글쓰기의 왕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의 내용은 될 수 있는 대로 손주들과 몇 년 동안 공부해 온 과정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한 것이 프리라이팅이었습니다. 공책을 주고 지금 생각나는 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쓰다가가 우물쭈물 중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 의식에는 무언가 잘 쓰려는 욕심이 있어 자꾸 머리를 굴리면서 두려워하는데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에서 얻은 내용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시도한 것이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써라’였습니다. 그림책을 보고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글을 써나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오감 중에서 시각이 모르긴 해도 감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은유에 대한 결정적인 개안을 하게 된 계기는 엄경희 교수의 『은유』였습니다. 조금만 글쓰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은유라고 하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을 찾아서 은유가 성립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가장 흔한 예가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김동명의 시입니다. 이것이 소위 ‘유사성을 축으로 한 은유’입니다. 하지만 엄경희 교수는 ‘차이성을 축으로 한 은유’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차이를 가지고 그대로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앞의 김동명의 시의 예를 가지고 응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내 마음은 호수를 푸른 하늘로 날려버렸다.’


2018년 1월 6일부터 ‘은유 연습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의 『내 삶의 글쓰기』였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은유를 연습하는 방법이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글쓰기에 대한 책을 백여 권 넘게 읽어봤지만 이런 예시는 처음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손주들에게 당장 연습을 시켰습니다. A항에는 구체적인 사물명사를 네 가지 나열하고, B항에도 구체적인 사물명사를 네 가지 나열하여 그들을 짝을 지워 은유를 만드는 연습이었습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려면 논리를 뛰어넘는 상상과 발견을 해야 합니다. 3년이 지나고서는 B항에는 구체적 사물명사 대신에 추상명사를 대신했습니다.


은유란 몽상하는 촛불과 유사합니다. 은유는 현실적이 아니고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촛불은 어둡던 우리의 의식을 밝혀줌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고 우리의 자아를 확장시켜줍니다.


『초등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여 거기에 있는 질문을 주어서 글을쓰게 했습니다. 그 글에 대해서는 문장 하나하나를 은유와 진술로 구분하여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 장면 쓰기―이것은 제가 임의로 지은 말입니다―를 시켰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디선가 본 글에서 따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셨다’라고 쓴다면 이것은 한 장면을 그저 멀리서 한번에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세분하여 자판기에서 동전을 넣는 장면, 커피가 나오는 장면,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장면, 이렇게 세 장면으로 나누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따라와 주었습니다.


최근에 칸트의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종합명제’가 은유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익힌다면 은유를 몸에 익힐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의 글은 성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손주와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고 혹은 아이들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부모님들이 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어렵다고 혹은 하기 싫다고 하여 떼를 쓰면 돈도 주고, 때로는 멀리 서울까지 가서 맛있는 밥도 사주면서 꼬셔가면서 해왔습니다. 그것도 이제는 중학생이 되니 학교 공부,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고 제 욕심대로 따라와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매달 1일에 과제를 내주고 있고 따라오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릴 때 몇 년 동안 공부하고 연습한 보람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작문을 하면 나름 은유를 구사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저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졸견이지만 평범한 문장들도 거기에 은유를 포함한 문장이 들어가는 순간 그 글은 품격이 달라진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손주들의 미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면 저로서는 그들에게 남기는 물질적 유산은 별로 없어도 그들의 커다란 정신적 자산이 되리라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