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걸음이 정체성이다
오랜만에 시를 쓰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십오륙 년 동안 검도에 저의 열정을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을 드린 건 사실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몸이 받쳐주지 못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한 이삼 년 동안 소설 공부도 해보았지만 역시 저는 체질상 소설 타입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소설은 한 편 쓰려면 많은 자료 수집이 필요하고 시에 비해서는 호흡이 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쯤인가 어머니의 사촌이 되는 형님이 그 당시 경남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한 글이 교내 신문에 난 것을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내용은 물론 생각나지 않지만 별이 어쩌고 하면서 쓰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제 마음에는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2가 되어 시랍시고 쓰고는 저 혼자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서 시를 쓰는 선배를 만나서 졸시를 쓰면서 흉내를 냈습니다. 인생유전이라고 흘러서 진주까지 와서 살게 되었고 2001년 우연히 포엠토피아를 알게 되어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분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기윤 교수였습니다. ‘포엠’에 들어가서 얼마 안 되어 제가 「흉부 사진」이란 시를 올렸는데 교수님께서 ‘시‘라고 하면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느껴집니다. 아, 나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기쁨이었지요.
그 당시는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식사하고 노래방에 가는 것은 당연지사고, 게다가 일박씩 하는 건 좋은데 왜 그렇게들 싸웠는지 그때의 치기(稚氣)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미국에 있던 여자분이 저를 갈구면서(?) 송재학 시인 운운하기에 그가 얼마나 잘났나 하여 오기로 그분의 시는 모조리―한 권은 절판되어 서울의 국립도서관에서 복사해서 책을 만들었지요―사서 그때 제가 읽은 오규원의 『현대시 작법』이란 책에 나오는 대상 인식 방법론에 따라 그의 시를 전부 다 저 나름으로 분석을 했습니다. 일이 년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오규원에 따르면 대상 인식을 하는 방법은 크게 관념적 관점과 사실적 관점이 있으며, 전자의 대표적인 것은 풍자적 지각과 해석적 지각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감각적 지각과 사실적 지각이 있습니다. 범박(汎博)하게 말해서 어떤 논리에 의해 시를 쓰면 해석적 지각이 되는 것이고 이른바 이미지로 그리는 경우는 감각적 지각이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제가 시를 쓰는데 그 노력이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것은 역시 그분의 스타일이 제게는 안 맞지 않았나 하고 요즘은 제 나름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연유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던 ‘포엠‘에서 옆방에 있던 이화은 방으로 이적을 하게 되어 선생님과 지금까지 연결이 되어 왔습니다. 꾸준했던 것은 아니고 들락날락한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항상 제 분수에 맞지 않게 저를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산을 해도 진작 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선생님 슬하에서 어정거리니 둔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시라고 쓰면서 가장 바랬던 것은 이화은 선생님의 시 같은 유의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행과 행 사이에 은유 혹은 감각적 비약이 있는 그런 시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타고난 성향이 달리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보면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붕(鵬)새가 되어 삼천리나 날개를 쳐서 구만리 하늘을 날아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풀에서 사는 매미나 비둘기는 아무리 해도 그렇게 붕새처럼 날아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옛날 백전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싸우라고 재촉을 받았던 일들이 다 휴의(休矣)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노력해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해도 그건 도로(徒勞)였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의 체질에 맞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매미나 비둘기가 붕새처럼 날려는 것과 같다는 이제 겨우 자각합니다.
운문은 산문과 달리 행갈이를 하면서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하나는 리듬을 형성하고 또 하나는 함축적 공간의 형성, 이미지의 비약이 있습니다. 이것은 체질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한계가 있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법만이 다는 아닙니다. 사실적 지각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광규 시인이 있습니다. 그 분의 시를 보면 어떤 이미지, 은유, 직유, 상징도 없이 사실 그대로 썼습니다. 단지 행갈이를 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옛날에는 이런 시는 나도 쓰겠다고 하고 건방을 떤 적도 있었습니다만.
산문시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나타날까요. 행이 아니라 한 단락, 혹은 산문시 전체가 함축적 공간의 형성을 나타냅니다. 리듬의 문제는 박자라든지 반복으로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산문 자체를 쓰면서 스스로 내재적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린이 지은 『정진규의 산문시 연구』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때 같은 동인이던 조동일의 번역으로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까지의 시세계를 섭렵하게 되고 현대시의 방법론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방법론적인 인식은 시의 근원성보다는 시의 미적인 장치에 더 흥미를 갖게 만들었고 현대시 동인에 참여하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행의 비약에 더 중점을 두는 시인은 ‘시의 근원성’보다는 ‘시의 미적 장치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두부 자르듯이 이분법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어떤 범주에 들어가는가를 궁리하다보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산문시의 정의도 『정진규의 산문시 연구』에서 보면 다양합니다. 복잡한 설명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산문시인데도 시적 산문, 즉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비약이 많은 글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진규 시인의 경우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면에 리듬이나 시적 수사가 없는 순수한 문장으로 구성된 산문시가 또 가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만. 저도 한때는 이런 비약이 많은 시적 산문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설가 김훈의 글이 이런 식이었다고 보고 한때는 흉내도 내어 보았지만 역시 저와는 체질이 잘 안 맞는지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다시 시에 손을 대면서 이상하게 본의 아니게 산문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수잔 티베르기엥이 쓴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을 읽고 나름 이게 나의 개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 능력이 별로 없는 ‘시적 미적 장치’보다는 산문을 쓰면서 ‘시적 근원성’ 혹은 ‘시 정신’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더 저의 체질에 맞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티베르기엥에 의하면 산문시를 쓰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이야기 산문시(narrative prose poem)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 산문시(object prose poem)입니다. 전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마지막에 비약, 환상, 반전을 띄면서 끝냅니다. 후자는 어떤 사물에서 받은 이미지를 산문으로 그리다가 거기서 건너뛰기, 환상, 반전을 보이면서 자신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말하고 마지막에 두 이미지 간의 공통점을 종합하면서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박이문의 말에 의하면 시는 과학의 가장 반대쪽에 있는 언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대상인 존재를 언어로 파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상을 우리는 우리의 감각으로 들어온 자극을 개념화하여 혹은 의미화하여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개념이 진정한 존재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를 진정으로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가깝게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이 시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참으로 오묘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요. 물론 맞는 인과율입니다. 하지만 이게 항상 맞지 않다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장자 얘길 해야겠습니다. ‘정성껏 심은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무심하게 땅에 꽂아놓은 버드나무 가지가 울창한 숲을 이룰 수도 있다’고 합니다. 노력한 대로 반드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욕심 내지 말고,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말고, 못나면 못난대로 남은 생애를 저답게 쓰고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곤붕(鯤鵬)은 못되고 뱁새가 되어 제가 날 수 있는 수풀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곤붕처럼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