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손에 들고 잠들라

'단순한 삶'

by 현목

진주 와서 26년 동안 고등학교 동창 관계로 동고동락 하던 P원장이 작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간염 진단을 받아 간기능 검사 수치가 높아 한 동안 술을 안 하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대로 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고 치료가 된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그는 벌써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점이 잘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는 악착 같이 방사선치료다, 화학요법이다 하는 것을 마다하고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점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조금도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하였다. 같은 아파트에서 나보다 다섯 층 아래에 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살갑게 대하면서 “선배님 들어가입시더” 하는 그의 목소리에 전혀 병색을 느낄 수 없었다. 나라면 정말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초인적인 그의 모습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려 면벽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으로 그가 15년을 더 살았다. 그 살은 세월 동안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뻐하며 살았고 그가 요즘 같았으면 그것을 간증한다고 전국 방방곳곳으로 돌아다니느라 바뻤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 15년 세월을 더 사나 덜 사나 그게 그것이다. 더 살려고 악착같이 투병하여 승리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그의 성공 분투기는 모든 사람이 따라가야 할 모범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한 편 달리 생각하면 담담히 병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것도 강인한 사람 못지 않게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오히려 죽음에게 더 가까이 날마다 다가간다고 하는 점에서는 담력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사년 새해가 되었다. 뭔가 새로운 다짐을 스스로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슨 국민학교 학생들처럼 ‘나는 ~하겠다‘는 식의 감상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나의 주위에서 친구들의 부음 소리가 점점 자주 들려 온다. 작년만 해도 서너 명이 된다. 동창인 J원장도 식도암에가 전이가 되었다고 서울 가서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56세에, 아버지는 70세에 돌아가셨다. 내 나이 이제 만으로 65세이다. 나라고 반드시 장수하라는 법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J원장의 와병 소식에 자극 받아서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였다.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고 의사들이 일반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3년 짧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대장 내시경은 7년 전에 했었다. 하기 전에 은근히 걱정 아닌 걱정도 되었다. 만약에 대장암으로 나오면 어떻게 내가 반응해야 하나? 나라고 반드시 within normal limit로 나오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한 점 불안한 마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하였다. 잠에서 깨면서 내가 죽어서 천국이 있다면 이런 어떤 소리에 깨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이 일순간 지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젊었을 때 충분한 양의 책을 소화하여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후회가 많이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어 있다면 훨씬 글 쓰는 데 깊이가 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회해 봤자 소용은 없다. 지금은 책을 읽어도 너무 효용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책을 읽어도 심지어는 내용을 하나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나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인생을 조금 더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의 모임을 줄였지만 그래도 피치 못하여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모임이 있다. 사람들 간의 친목을 위한 것이지만 너무 많으니까 시간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놓아두고 시간이라도 좀더 ‘타이트’하게 조을 필요성을 느낀다. 느슨하게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주범이 다름 아니라 티비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고 보면 괜히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별로 관심이 없던 비키니 입은 여자도 한 번 클릭하여 보게 된다. 이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후딱 날아가 버린다. 티비도 앉아서 보다 보면 굳이 안 봐도 될 것을 여기저기 눌러대면서 계속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정작 공부를 하려고 하면 이제는 피곤해서 할 수도 없다. 이런 악순환이 나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에 나의 각오라고 할까―유치하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우선 이 둘을 대폭 금지 혹은 절제를 해야겠는데 좋은 방법은 없을까? 조금은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내가 지난해 여름에 ‘글쓰기 마라톤’을 이틀 동안 행했던 사례가 하나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일체 티비와 인터넷을 안 보기로 작심을 하고 밥 먹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충무 김밥으로 때웠었다. 글을 쓰다가 피곤하면 책을 잡고 침대에 누워서 잠깐 잠을 청했다. 정 머리가 뭔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밖으로 산책을 나갔었다.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송하면서 보낼 수가 없다. 이러나 저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싶다. 문제는 이런 반복은 지루하고 뭔가 짜장 신나는 것이 없고 겉으로 보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인생의 커다란 비밀이 있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나 자신이 경험하여 아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절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므로 아예 금지로 나아가는 방법을 취하는 게 실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나에게 지금 요청되는 것은 지난 여름의 ‘글쓰기 마라톤’ 때와 같은 결단과 추진력이다. 내 인생의 초점을 더 좁혀서 살아야겠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잡동사니를 들어내어 비워내어야겠다. high thinking까지는 못가더라도 simple life라도 가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