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녀 오면서의 단상들

by 현목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18일간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아들 둘이 미국 아틀란타(Atlanta)와 트로이(Troy)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틀란타에서 8일간 머물다가 트로이로 올라가는 길에 보스톤을 들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들이 대학을 보스톤 근처에서 다녀서 보스톤(Boston)에 대한 추억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가고 싶어했습니다. 보스톤은 고티가 나고 사람들이 사는 것에 낭만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틀란타와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보스톤의 메리엇 호텔에서 2박3일을 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다시 아틀란타로 내려가고 작은 아들과 함께 지들이 살고 있는 북쪽의 트로이(뉴욕 주의 수도인 알바니[Albany] 옆에 있는 작은 도시로서 대학 도시임)로 올라가서 4박5일 있다가 다시 아틀란타로 저희 부부가 내려와서 머물다가 17일에 귀국하였습니다.


76년에 미국 가서 애들을 본 후 5년만의 여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여행한 적도 없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혈육과 만나서 지낸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잘은 인도하지 못했지만 두 번 가정 예배를 드리며 난생 처음 그들 앞에서 설교도 했었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돌에서 네 살 정도이니 아직 오리엔테이션도 없고 하니 같이 놀아주는 것도 힘듭디다.


요즈음은 한국도 미국에 대한 정서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미국은 좋은 나라, 우리를 도와준 나라라고 배워와서 그런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생각이 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신문을 통해 언젠가부터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국수주의 탓인지 몰라도 심지어는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표시하는 세력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이 저들의 국익을 위해 그랬다고 하지만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이 존재했을까 하고 저는 의심하는 쪽입니다.


여행 중에 만났던 미국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한정된 사람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미국이 천국도 아니고 범죄가 만연하기도 하고 인종 차별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저의 인상은 말 그대로 단상입니다.


우선, 그들은 여유가 있고 관용적이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말에 곳간에 인심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활이 풍요로우니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 동안 아파트에서 머물렀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면 90% 이상이 모르는데도 인사를 하였습니다. hello, hi, have a good day, 혹은 말은 안 해도 몸짓, 눈짓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저 사람이 인사를 하려는지 안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치게 되더라고요.


손자들을 데리고 거리를 지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차들이 오면 아예 5, 6미터 밖에서 완전히 정차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서서히 다가오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휙 지나가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2주 정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아이들에 대해 각별하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7월13일 작은 아들이 있는 트로이 시에서 다시 아틀란타로 오게 되었습니다. 공항이 있는 알바니에서 아틀란타로 직항을 이용하면 비행기 값이 비싸서 환승하기로 했습니다. 직행으로 오면 2시간 20분쯤 걸립니다. 환승 공항이 샬럿(Charlotte)이었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후 한시였는데 비행기를 타고도 1시간 늦게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 쯤 가다가 비행기가 착륙하기에 샤를롯 공항에 다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영어 실력에 안내 방송을 잘 알아먹을 수도 없어서 옆에 앉아서 책을 계속 읽고 있던 중년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요. 그의 대답이 지금 샤를롯 공항에 천둥번개가 쳐서 30분간 공항이 폐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린 이곳은 샤를롯 공항 바로 밑에 있는 그린빌(Greenville) 공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하겠다는 것입니다. 공항 폐쇄가 해제되었는데도 비행기는 꼼짝도 않고 승객들도 무덤덤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후 7시15분에 아틀란타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안 가냐고 옆 사람에게 물으니 기름을 넣어야 한다나요. 세상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비상착륙한다고 기름을 공중에다 다 쏟아부었다는 말인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항에서 기름을 넣는데 왜 이렇게 오래 있다가 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서툰 영어로 옆 사람에게 물어도 자기도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계속 읽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착륙하고 2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주유하고 2시간 30분이 되어 출발하였습니다. 자연히 환승하려던 비행기는 놓치고 다음 비행기를 탔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핵심은 이것이 아닙니다. 두 시간 반 동안 비행기 속에 있던 승객들―동양인은 저희 부부뿐이었습니다―중에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부아가 치밀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 거의 6시간 동안 갇혀 있는데도 제가 보기에는 어느 누구도 승무원에게 소리치는 사람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한국 상황이라면 성질 급한 놈이 한 성질했을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놀랬습니다. 이것이 이 사람들의 저력인가? 교양 있는 사람은 이래야 하나? 신경이 둔한 사람들인가? 솔직히 말해 존경스럽기도 하였지만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큰 아들의 아파트에서 10분 정도 가면 Barnes & Noble이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의 체인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점이 상당히 크고 중앙에는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빵도 팔면서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성경과 신앙서적 몇 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문학 코너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혹시 Robert Frost 시인의 책이 있으면 사볼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시 코너는 없었습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시집이라고는 제가 못 찾아서인지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도 키노쿠니야(紀伊国屋)라는 일본서 제일 큰 서점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생각보다는 시집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라는 것이 한국적인 특별한 상황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일부 마니아가 되는 것인가? 세계적인 조류에서 시라는 것이 별로 포션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구태어 시라는 것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시를 쓰는 것은 그저 자신을 자위하는 수단인가? 그렇다면 산문을 써서 뭔가 남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상념이 잠깐 지나갔습니다. 한국은 어쩌면 시인들에게 축복의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행복한 처지에 있는 것 아닐까요? 비록 현대의 주류에서는 벗어나 있을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하여튼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여정 동안 웃지 못할 사연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친절한 사람도 만났고요. 여행은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살아가는 시간들입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각박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입니다. 맛있는 스파이스(spice) 같은 존재이지요. (2011년 7월 21일에 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