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과 헝겊 토끼 인형 만들기 6
"선생님, 지우도 인형반이라면서요?"
어느 반 수업하는 중에 누가 묻는다. 지우는 덩치도 크고 콧수염이 거뭇한 2학년 학생인데 실 꿰는 것, 매듭짓는 것도 힘들어하던 학생이다. 번번이 나를 불러 매듭을 지어달라 하고 아무리 가르쳐도 까먹곤 했다. 동아리 시간이다 보니 자유롭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했는데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는 종례까지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래, 지우가 토끼 인형을 아주 귀엽게 완성했지."
"제가요?"
제가 인형을 완성했다고요?
본인도 모르는 인형 완성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사실 지우는 좀 서툴긴 해도 지난 동아리 시간 열심히 인형의 팔다리를 이어 붙였다. 실도 못 꿰던 녀석이 장족의 발전을 했고, 다음 달에 학교 축제에 전시해야 한다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양 열심히 바느질을 했다. 물론 귀 한쪽과 두 팔을 다 잇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은 제시간에 완벽하게 인형을 완성한 학생은 열네 명 중 여섯 명 정도밖에 안 된다. 어떤 아이는 귀를 못 붙였고 어떤 아이는 다리 한 짝이 남기도 했으며 머리 몸통만 겨우, 그것도 프랑켄슈타인처럼 이은 게 전부인 아이도 있었다. 그러니 그 나머지는 나의 몫. 공강 시간 틈틈이 인형 팔다리를 꿰매느라 내 바느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모든 인형은 내 손을 거쳐 온전해졌다. 그 사실을 지우, 당사자만 몰랐을 뿐. 아니, 축제의 날 전시장에 놓인 본인들의 인형을 보고 아이들은 깜딱! 놀랄 것이다. 저 어여쁜 인형이 정녕 나의 것이란 말인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저토록 깔끔하단 말인가?
실패한 수업인가
내가 수업을 계획할 땐 언제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목표치를 조금 높게 설정하고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게끔 하여 끝내고 나면 "오? 내가 이걸 해냈다고?" 놀라게 만들곤 한다. 그 수업들은 대개 성공적이었다. 다들 남학생들이 50센티 미터 넘는 인형을 손바느질로 완성한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나와 내 아이들을 믿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수업을 실패! 과학실에서 재봉틀을 빌려와 드르륵 박아주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토끼 인형 중 자신의 박음질로 이어 붙인 것은 다리 한 짝 정도가 평균이다. 물론 그것을 잇는 것은 재봉틀로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머리와 몸통을 잇는 공그르기를 배울 때 교실은 열기가 최고조였다. (그건 모두들 해냈다. 첫 땀은 선생님들이 도와주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냐!)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귀, 혹은 팔, 또는 다리를 마저 잇지 못한 채 축제 전 시간을 마쳤기에 나는 공강 시간마다 열 명, 아니 열 마리 가까운 토끼 팔다리를 잇는 바느질을 해야 했던 거다. 그러니 완벽한 의미에서 아이들 스스로 완성한 인형은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전시가 끝나고 인행을 돌려주었을 때 아무도 '이거 내가 다 한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보기엔 마저 이어 붙인 나의 노고는 '약간의 도움'일뿐인 거다.
심지어 "자네의 인형에 만족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진짜 중요하다. 아이들이 "내가 해냈어!"라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이다.
파멜라 메츠의 <배움의 도>(지금은 절판)는 노자의 도덕경을 교사 관점으로 쓴 책이다. 거기 나오는 이 대목, 평생 내 교사로서의 자세를 잡는 데 큰 영향을 준 대목을 여기 소개한다.
슬기로운 교사가 가르칠 때
학생들은 그가 있는 줄을 잘 모른다
다음가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교사다
그다음가는 교사는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교사다
가장 덜 된 교사는 학생들이 미워하는 교사다
교사가 학생들을 믿지 않으면
학생들도 그를 믿지 않는다
배움의 싹이 틀 때 그것을 거들어 주는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진작부터 알던 바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가 일을 다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한다
"대단하다! 우리가 해냈어"
- <조산원 교사>
그러니까 아이들이 '우리가 해냈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 수업이 완벽하진 않았어도 나름대로 성공한 수업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배은망덕하진 않다. 수업 평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수업 장면으로 '선생님들이 도와주신 일'을 꼽은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 자그마치 교장선생님께 직접 바느질 지도를 받았던 경험이 흔하지는 않을 터이다.
이 수업이 계획대로 완벽히 성공한 수업은 아닐지라도 끝끝내 인형들을 완성했다는 것(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도 칭찬을 하련다), 인형의 완성도를 떠나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공그르기'를 모두 배웠다는 것. 그리고 비록 대여섯 명 정도이지만 어떤 학생들은 온전히 자신의 솜씨로 인형을 완성했다는 것을 성과로 꼽고 싶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대단한, 칭찬받고 싶은 성과가 하나 있다. 3학년 학생 하나가 내가 준 패턴이 아닌 자신만의 창작 패턴으로 토끼 인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율도 완벽하고 버선코처럼 살짝 빠진 콧날에 다트를 넣어 입체감을 준 뒤통수와 엉덩이, 심지어 수학적 계산에 성공한 동그란 발바닥과 서혜부의 자연스러운 사선을 구현하였다. 게다가 다른 학생들은 눈코입 수놓는 게 힘들어 네임펜으로 그려 넣었지만 이 학생은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새틴 스티지로 눈코입 수도 놓았다. 3학년 구00 학생! 너의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며 너의 미적 감각은 너의 삶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네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내 장담하여 네 미래를 축복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