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과 헝겊 토끼 인형 만들기 5
"계엄 선포한 건 잘못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감옥까지 가야 해?"
수업 시간에 너무나 얌전한 범생이, 인사할 때 45도로 인사하는 예의바른 친구(얌전이,라고 부르겠다)가 한 말이다.
의잉?
그러자 그 옆에, 말이 너무 많아 선생님들에게 훈육을 들을 때도 말을 못 멈춰 더 혼나는 친구(수다맨,이라 부르겠다)가
"불법이니까."
라고 말해준다.
11월 학교 축제 때 소년들이 만든 토끼 인형과 몇몇 선생님들 작품까지, 한 스무 마리를 전시하는 꿈에 젖어 있던 나는 이제 슬슬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8월 동아리 시간까지 머리 몸통에 솜을 넣고 다리 한짝 손바느질하기가 목표였지만 그걸 해낸 아이는 두어 명 정도. 이제 9월, 10월 두 번밖에 시간은 없건만...
그나마 3학년 학생들은 몰두해 인형을 만들고 있는데 중2 셋 중 특히 두 아이는 매 시간 수다, 아니, 토론 삼매경이라 바느질은 한둥만둥이다. 하지만 수행평가도 아니고 즐겁자고 온 동아리이기 때문에 나도 태평이다. 심지어 인형 패턴을 그린 후 재단을 할 때도 시접을 1센티 정도 꼭 남기라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도 잘못 오리는 아이들이 있을 때도 난 태연히 말했다.
"괜찮아, 전체적으로 좀 작게 바느질하면 돼."
그런데 얌전이와 수다맨은 좀 심했다. 진도가 안 나가는 정도가 아니다. 얌전이는 인형도구를 담은 가방을 통채로 잃어버렸고 수다맨은 엉켜버린 실타래와 헝겊 뭉치를 쓰레기 산처럼 쌓아 놓고 수다 삼매경이다. 그러나 나는 화내지 않는다. 얼른 한 층 위 교무실로 뛰어가 한손에 쏙 들어오는 곰돌이 인형 패턴과 새 헝겊을 가져다 주고는
"너희는 요 작은 인형을 만들자."
라고 말했다.
감사하다고 스무 번쯤 인사를 하고 헝겊에 인형 패턴을 그리던 둘은 계엄과 대통령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얌전이는 끊임없이 전직 대통령을 불쌍해한다.
"그게 잘못일 수는 있어도, 그때 계엄을 해야 한다는 판단은 그의 정치적 성향에서 온 거일 수 있잖아."
"아니, 그게 불법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계엄을 선포하는 게 불법이지."
그렇게 두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라면 멱살을 잡고 끝날 법한 정치토론을 단 한 번 목소리 올리는 일도 없이 다정하게, 조곤조곤 나눈다. 얼마나 대화를 재미나게 하는지 결국 얌전이는 두 겹 겹쳐놓고 헝겊을 잘라야 하는 인형 패턴에서 뒷 장의 왼팔을 뚝 잘라 버렸고 수다맨은 또 시접도 없이 테두리를 바짝 오려버렸다. 그래놓곤 지난 시간에 내가 한 말을 따라한다.
"괜찮아, 좀 작게 만들면 되지, 뭐."
하지만 이 인형은 너무 작아서 더 작게 만들면 뒤집어 솜을 넣었을 때 모양이 안 나온다고 했는데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인형을 완성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의 대화는 가지를 뻗어나갔다. 재봉틀로 아이들의 토끼귀를 열심히 박음질해주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의 주제는 '난민'으로 발전했다.
요즘 많이 하는 정치색 짙은 교회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듯 보이는 얌전이는
"난민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아. 사회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그치, 받기 부담스럽지. 하지만 그게 참,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우리도 난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받아주긴 해야 하지."
수다맨은 수업 시간에 떠든다고 혼이 많이 나는 아이지만 약간 독특한 영재 스타일의 아이다. 책도 많이 읽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납득하 때까지 계속 질문을 하거나 주장을 하는 학생이다. 그애의 논리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다음 수업 시간엔 좀 떠들어도 용서해줄까?' 하는 편파적인 생각을 해본다. 물론 생각만 할 뿐 아이들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주식이 어쩌고 자본주의가 어쩌고 경제 토론을 했었다.
동아리 활동도 수업 중인 거니까 휴대폰을 안 보는 게 마땅한데 잠시 얌전이가 휴대폰을 봤나 보다. 수다맨이 "선생님 얌전이가 자꾸 폰 봐요." 하고 일렀다.
"그건 반칙이얌." 내가 그랬더니 수다맨이
"샘, 얌전이가 자꾸 주식이 오르는지 봐요. 10원 올랐네, 아니 도로 떨어졌네, 이러면서요"한다.
중학생도 주식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건가? 휴대폰은 안 보기로 약속했는데 그때부터 아이들은 주식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더랬다. 주식회사가 어떻고 자본주의가 어떻고, 뭔가 금융경제 관련 전문 용어를 섞어 대화를 나누는데 사회시간에 배운 이야기를 하는 건지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었던 대화다. 그게 오늘은 정치토론으로 바뀐 거다.
음악을 틀어놓고 바느질도 하고 자유롭게 모둠활동으로도 하니까 수다쯤이야. 괜찮다. 하지만 나는 그 토론을 옆에서 들으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얌전이'의 그 순둥한 모습과 태도 안에 저런 견해가 있다는 것에 하나. 무엇보다 진짜 놀라운 건 저렇게 완전 극과 극의 정치적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점. 정말 그야말로 '정치적 성향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화처럼 보였다. 이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대화법인 걸까? 물론 그 대화의 끝에 진보적 성향의 수다맨은 자기가 자르고 남은 헝겊 자투리에 사인펜으로 '윤 옥에 in'이라고 써 놓았다.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얌전이에게 조용한 플랭카드 시위를 한 것이리라.
수업시간이 아닐 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수업 직후 교탁 주변에 모여드는 아이들과 잡담을 하거나 "너네 요즘 무슨 노래 들어?" "그 게임은 뭐야?" "뭐 19금인 애니메이션을 봤다구?' 이런 대화를 나눠야 그들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데 늙어가며 수업만 마치면 교무실로 도망오기 바빴던 내게 오랜만에 아이들의 수다를 듣는 일은 매우 신선했다. 10대에게 극우논리가 스며든다고 걱정들을 하는데 얌전이처럼 모범적인 아이가 불법이나 부당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근심스럽기도 했고(남성성 강한 아이들이 일베 논리를 펴거나 여혐 발언, 패드립을 하는 적은 많지만). 그럼에도 희망 하나를 본다면, 저들은 우리가 추석 명절에 모인 친척들끼지 정치적 입장 차이로 언성을 높이는 그런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저렇게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저들이라면 언젠가는 장갑차와 헬기, 중화기를 들고 국회에 난입하는 폭력 사태가 왜 부당한지를 대화로 이해하고 극복하는 시간도 열리지 않을까, 하고.
그나저나 인형은 과연 11월 축제때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 동아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온 나는 이틀에 걸쳐 아이들이 재단해 놓은 토끼의 팔, 다리, 귀를 모두 드르륵 박아주었다. 9월엔 목과 몸통을 공그르기로 이을 것이다. 그게 제일 힘든데 이제야 박음질을 이해한 우리 아이들이 그걸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동아리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교장, 과학샘, 상담샘들과 어찌저찌 공그르기를 해보아야겠지.
인형만들기 반을 하겠다 하니 자기도 만들겠노라, 해서 헝겊과 재단 패턴을 나눈 선생님이 모두 너댓 분이다. 와서 수업을 듣지 않으면 따로 설명하긴 어려워서 동아리 수업에 들어와 인형만들기를 배우시라 했다. 교장, 우리 학교 최고 연장자 과학샘, 상담샘, 사서샘 들은 각각 민트색, 인디언 핑크, 베이지 색 헝겊도 받고 누구보다 열심히 설명을 듣고는 가위로 재단까지 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기 교무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너~무 바느질을 못했기 때문이다. 바느질이 아니라 아예 내 설명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해는 마시라, 산만하고 못 된 아이들은 아니다. 들으랄 때 안 듣고 나중에 천진하게 '내게 잘 좀 설명해 보거라''친절은 어른의 의무가 아니더냐?''사춘기 남학생이 인형을 만들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송하게 여겨야 하거늘~!' 뭐 이런 태도라 그렇다. 물론 질문을 할 때 그들은 아주 예의바르다. 수줍어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냥, 좀 띨띨하고 바느질을 못 할 뿐 아주 예쁜 소년들이다!
그런 아이들 모습을 보다 보니 본능적으로 핏톨 자체가 '선생'인 이분들, 자기 교무실로 돌아가 느긋하게 손바느질을 하며 인형만들기 힐링을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아냐, 헝겊 오릴 때 여백 주라고 아까 풀꽃샘이 그러셨잖아.""이그, 헝겊이 밀리네, 안 되겠다, 이리 줘봐, 내가 오려줄게.""뭐? 실을 꿰 달라고? 나 노안인데?""박음질 한 땀을 1센티도 넘게 하면 어쩌쥬?" 이러면서 정신없이 가르쳐주신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모두 개별지도를 받으며 인형을 만드는 중이다. 정 안 되면 실밥이 보이는 채 겉으로 박음질을 해버린 3학년 형아처럼 (약간 처키처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저주 인형 모양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꿰매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