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
몇 주 전 북바이북에 갔다가 그림에 관한 책을 두 권 사 왔다. 이 책이 그중 하나다. 작아서 여행 갈 때 가져갈까 하고 아껴 두었다가 그냥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분이 글도 잘 쓴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고 인턴과 정직원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유튜버, 작가, 강사 일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대학 시절 교수님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던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낀다.
모든 그림이 다 성공적이지는 않다. 잘 그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도전하지만 생각만큼 잘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림을 언제나 잘 그릴 수는 없을뿐더러 그 모든 과정이 공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잘 그리면 된다. 하지만 망칠까 봐 그리지 않으면 실력은 절대 늘지 않는다. 그림 그리는 것도 근육을 사용하는 일이라 꾸준히 계속하지 않으면 점점 잘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하는 것 같다. 간혹 망쳤다고 생각한 그림을 다시 꺼내 보면 의외로 잘 그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느낀 때가 있었기 때문에 격하게 공감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단 도전해 보는 것, 그게 어떤 일에든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저자는 학창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림은 자신만의 취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림보다 내 그림이 나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자부심이 있어야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자만심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과할 경우, 계속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나의 그림 활동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저 사람보다 못 그리는데 뭣 하러 그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붓을 꺾게 된다. 어떤 일에든 남과의 지나친 비교는 금물이다.
책을 읽다가 그림 그리는 일은 인생의 다른 일들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가 인용한 “시를 평생 썼지만 그래도 아직 시 쓰는 게 어렵다”라고 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그녀는 평생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 그리는 그림은 처음이므로 잘하지 않아도 된다. 화가가 그렇게 말할 진대 초보 화가들의 실패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영상을 찾아보니 쿨하고 시크한 목소리가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 담겨있다. 30여 년 동안 살아오며 깨달은 것들, 생각,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주로 연필로 그리는 그림이 많았다. 수채화에 빠진 나이지만 순식간에 선을 연결해 그림을 완성하는 그녀의 영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크로키용 스케치북을 쟁여 놓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