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남편을 사랑해 보기로 했다

by 이아희


아이가 세 살 때쯤 우리 부부는 서로의 바닥을 보이며 싸웠다. 서로에게 불만이 많았고 곪고 곪았던 것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은 채 동물같이 서로를 헐뜯고 상처 냈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 상대방의 마음에 더 많이 상처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혼이야기가 나왔고 실제로 서류도 작성했다.

엉엉 울며 방에 들어와 곤히 자고 있는 세 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 눈물이 났다.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하는 못난 부모라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다음날 남편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았다.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정서적 이혼을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풀리지 않을 사건이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나 자신을 속이기로 했다. 괜찮다고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은 30년간 잘하던 건데 아이를 위해서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외면해 버리면 아이에게 좀 더 나은 선택일 거라고 믿었다. 싸움 이후로 우리 부부는 예전 같지 않았다. 작은 균열들이 모여 결국 완전히 갈라져 버렸지만 서로의 균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충 붙여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평소엔 괜찮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풀지 못했던 예전 감정들도 더해져서 또다시 갈라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랬던 우리 부부의 사이가 변한 건 우습게도 둘째가 태어나고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둘째의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부터이다. 첫째 때는 육아를 나 혼자 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 놀아주긴 했지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기저귀 갈고 아이케어 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이기도 하고 잠도 잘 안 잤다.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남편이 조금이라도 쉬고 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남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것들을 몇 번 참은지라 짜증스러운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그러면 또다시 싸움이 시작된다. 남편에 대한 서운한 점을 말하는데 짜증스러운 내 말투 때문에 남편은 내 말투에 집중을 한다.

본질이 흐려진 채로 끝난 대화로 나도 기분이 풀리지 않고 남편도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끝났다.

망각이라는 인간의 축복덕에 어영부영 넘어가 한동안 또 잘 지내기도 하지만 마음 저 한편에 남아 있던 풀리지 않은 감정들이 다툼을 할 때 더해져 더 심한 싸움이 되었다.

또 내가 힘든 일을 툴툴대면 남편은 자기 힘든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공감이 없었다.

나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말을 말자.

서로의 힘듦을 외면한 채 나 힘든 것 좀 위로해 달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남편이 새벽에 둘째를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평일 새벽은 내가 보고 주말 새벽에는 남편이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둘인데 당연히 육아해야지라고 느끼지 않고 나는 참 고마웠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남편한테 표현했다.

그러자 남편은 신이 났는지 더 잘하려고 했고 나는 또 그 모습에 나도 남편한테 잘하려고 하고 더 표현하려고 했다. 나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에서 당신 힘들지? 좀 쉬어. 아니야 괜찮아 당신이 좀 쉬어로 바뀐 것이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니 나는 다시 이 남자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누가 보면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상처받고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상태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사랑해야 한다.

그게 나를 그리고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