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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Oct 26. 2023

아픈 것을 말하지 못하는 병

치매도 육아처럼 31

 "보호자님, 어르신이 열이 나서 병원에 왔는데 독감검사를 해보라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네? 아침에 별말씀 없으셔서 몰랐어요. 검사 부탁드릴게요.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주세요!"


 센터에서 아침마다 체온을 재는데 그날은 38도가 넘었고 센터 어르신 몇 분이 이미 독감을 앓고 있던 중이라 병원에 모시고 갔다고 한다.

 같은 건물에 내과가 있어서 빠른 진료가 가능했고 검사결과는 한창 유행하던 독감이 맞았다.

 마침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칠 무렵이라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열 때문에 상기된 얼굴의 어머니가 요양보호 선생님 곁에 힘없이 앉아 계셨다.


 "어머니 많이 편찮으세요?"

 "아니야, 난 아픈 데가 하나도 없어!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

  "......"


 


 의사와 상담하고 빠른 회복을 위해 링거를 맞게 했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수액으로 맞는 타미플루는 환각 부작용이 가끔 나타날 수도 있고, 어머니가 혹시 주삿바늘을 빼거나 낙상 같은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에 대비해 나도 함께 주사실에 있어야 했는데 친절한 간호사가 빈 침대에 눕게 해 주었다. 좀 민망하긴 했지만 2시간가량 걸린다니 못 이긴 척 드러누웠다.

 약기운 때문인지 금방 잠이 든 어머니를 지켜보는데 아까 만난 요양보호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에구.. 우리 어르신이 아프다고 표현도 못하게 되셔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요즘 부쩍 안 좋아지신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즈음 어머니에게 아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치매 초기, 어머니는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울 때마다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 아프다고 했다. 

 식탁 위에는 병원이며 한의원에서 지어 온 약이 수북하게 쌓이도록 약 먹는 것은 잊어버려도 소화가 안되고 몸이 무거운 것은 민감하게 알아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프다는 말씀도, 약을 찾는 일도 없어졌다. 

 망각이 대장 노릇하는 치매의 특성이 슬픔도 노여움도 잊게 하고 그래서 치매환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암에 걸리는 일이 드물다고 넌지시 일러주던 약사님의 말씀도 생각났다.

 5개월치 약이 담긴 커다란 약봉투를 내어주며 치매가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위로하고자 건넨 말씀이었고 적잖이 위로를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날만큼은 암환자를 대하는 것 못지않게 그저 가슴 아플 뿐이었다. 그리고 전조증세가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했다.

  



 전날 저녁, 어머니가 평소와 다르게 식탁에서 턱을 괸 채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시길래 취조하듯 캐묻기 시작했다.

 "어머니!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응? 아니야! 아주 맛있는데? 이렇게 잘 먹고 있는 걸."

 그러면서도 젓가락으로 음식을 이리 밀었다 저리 밀었다 하면서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으셨다. 

 "오늘 센터에서 간식을 많이 드셨어요?"

 "먹긴 뭘? 센터에선 아무것도 안 줘."

 (센터에선 오전, 오후 두 차례 간식이 제공되고 있었고 특별한 행사나 생일파티가 있는 날은 식사량을 줄여야 할 만큼 간식을 많이 드시기도 한다)


 아니, 그럼 왜 안 드시는 건데요?

 속으로 이런 말을 삼키며 애써 차린 음식을 남기는 어머니에게 슬슬 부화가 치밀어 올라 어디가 편찮으신지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이미 열이 나서 입맛도 없고 기운이 없어서 못 드셨던 건데... 열이 그만큼 높았으면 몸도 쑤시고 괴로웠을 텐데...ㅜㅜ

 

 며칠 전에 센터에서 영화관람을 하러 갔는데 꽤 많이 걸어서 피곤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표정도 밝고 명랑해서 따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내 불찰이다.

 어머니가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여든이 넘은 노인이고, 센터의 다른 어르신들이 독감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감염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렸다. 

 떨어져 살 땐 필수적으로 챙겼던 항목들을 가까이 살면서 오히려 놓칠 뿐 아니라 치매 돌봄에 대해서는 꽤 안다고 자부했는데, 면역력 약한 노인을 대하는 기본자세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센터에서 간호선생님이 매일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지... 




 다행히 어머니는 주말 동안 말끔히 나아서 센터에 가실 수 있게 되었다.

 마중 온 요양보호선생님이 어머니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셨다.


 "어르신 이제 독감 다 나으셨어요?"

 "나? 내가 언제 독감에 걸렸다고 그래? 난 그런 거 안 해!"

 

  네 어머니, 이젠 정말 그런 거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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