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육아처럼 41
언니들이 남편 생일에 실내자전거를 선물해 주었다.
앉기만 하면 절로 운동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던데 남편에겐 처형들의 마음을 상기하는 물건일 뿐, 귀가하면 먹고 쉬는 일에 올인하느라 자전거와는 저만치 거리를 두었고(남편 뱃살도 걱정했지만 실은 근력이 부족한 나를 위해 마련해 준 것이어서 언니들은 그다지 서운하게 여기지 않았다ㅎㅎㅎ) 나는 며칠 열심히 타다가 그만 방광염에 걸리고 말았다. 의사가 가급적 다른 운동을 하라고 권하길래 나마저도 은근슬쩍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실내자전거는 시집오자마자 소박맞은 새색시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 선보일 사람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바로 꾸준히 인생몸무게를 경신중인 어머니!
마침 그 자전거는 어머니 주간보호센터에 있는 것과 똑같아서 반가워하시니 천생연분, 찰떡궁합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부터 운동부족과 항우울제 복용으로 인해 키에 비해 심한 과체중이 되었다.
(일흔 무렵까지 43kg 정도를 유지하다가 여든둘이던 그즈음에는 52kg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운동신경도 둔감해졌는데 몸을 가누기가 더 어려워져서 산책할 때 넘어질 뻔한 일도 많았고 계단 내려갈 때 무릎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제 안전하게 집에서 근력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자전거 덕분에 몸도 가벼워지고 다리근육도 튼튼해져서 계단 내려갈 때 아고고 신음이 사라지려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서 상상으로나마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껏 달리시려나...
혹시 그러시려나...
살짝 기대하며 틈나는 대로 자전거운동을 권했는데 웬걸,
"어머니 앞으로 돌리셔야죠! 그러면 자전거가 뒤로 가버려요!(물론 제자리에서 1미리도 움직일 리 없지만)"
"내가 언제 뒤로 돌렸다 그래? (얼른 방향을 바꾸어 돌리며) 이것 봐! 앞으로 간다구!"
앞으로 돌리기가 힘드니 앞뒤로 까딱까딱하거나 차라리 뒤로 돌리는 편을 택하기 일쑤인 어머니.
뒤로 돌려도 운동만 되면 좋으련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 이대로 유능한 헬스머신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가 싶었는데, 몇 달 후부터 본연의 임무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용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침에 센터차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초단기 어머니 보디가드'를 맡게 된 것이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침마다 하던 등교 기사 업무가 끝이 났다. 아울러 딸을 데려다주고 오는 내내 어머니 때문에 마음 졸이던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그 해방감은 어머니의 반복적인 질문공세에 꽁꽁 묶여 버렸다.
매일 아침, 채비를 끝낸 어머니는 센터차가 오나 안 오나 거실창으로 아래를 내다보다가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얘, 오늘이 무슨 요일이니? 문화센터 가는 날이지?"
"네 조금만 더 있으면 차가 올 거예요."
"응~ 난 하도 안 오길래 안 가는 날인가 했지 뭐야? 호호호"
그리고는 어느새 챙겨 놓은 가방 속을 다시 확인하다가 슬슬 거실창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그 아래를 내다보며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얘, 오늘이 무슨 요일이니? 문화센터 가는 날이지?"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얘, 오늘이 무슨 요일이니? 문화센터 가는 날이지?"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얘, 오늘이 무슨 요일이니? 문화센터 가는 날이지?"
센터차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묻고 또 묻는 어머니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네!!!! 조금만 더 있으면 도착할 거라고 몇 번을 말해욧!!!!'이라고 속으로 버럭거리던 나는 고작해야 1~20분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자전거에 태웠다.
대책 없이 일단 앉히고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기 전과가 수두룩한 사기꾼답게;;;
우선 계기판에 숫자가 뜨는 걸 확인시켰다.
"어머니, 이 자전거를 굴리면 전기가 만들어져요. 여기 숫자가 50이 되면 센터에서 신호를 받고 차를 보내준대요. 그러니 자 열심히, 왼 발, 오른발, 하나, 둘, 하나, 둘!"
프로 사기꾼답게 사뭇 진지한 내 말에 어머니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래? 오~ 이럭허면 전기가 생겨? 내가 전기를 만든다는 거지? 내가 제일 많이 만들 거야!"
"와 벌써 25예요! 조금만 더요! 파이팅!"
(이쯤 되면 찰떡궁합은 나와 어머니가 아닌가 싶다;;;)
진짜 전기는 생산하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굴리는 자전거바퀴의 경쾌한 움직임에 내 짜증게이지는 전자동으로 쑥 내려갔다.
어머니를 자전거에 태우기 전에 내 머리를 발전기와 연결했으면 아마 우리 집 하루치 전력은 족히 만들었을 만큼 '열나 짜증'이 최고조로 출력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어떤 날은,
"이런 걸 해서 뭐 해? 내가 왜 그 사람들 전기를 만들어주냐고!"
역정을 내며 안장에서 내려오기도 하셨다.
아하하하^^; 옳은 말씀이긴 한데 그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워서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자전거 전면에 부착된 계기판이 북스탠드 역할을 해주어서 앞면엔 주기도문, 뒷면엔 센터차가 올 거라는 메시지를 큼직하게 인쇄해서 잘 보이게 펼쳐놓고 읽으시며 슬슬 다리를 움직이도록 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놓고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검색해서 틀어드리기도 하고, 계기판 숫자를 크게 읽어보라고 하기도 하면서 어머니와 자전거가 일심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믿음직한 자전거가 어머니를 맡아주면 나는 방해받지 않고 아침 설거지를 하고 출근준비를 할 수 있었다.
교화된 전과자처럼 선량한 미소를 머금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색이 헬스기구인 실내자전거에게는 크나큰 실례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아침마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으니 옷걸이로 전락한 이웃집 자전거에 비하면 체면치레 정도는 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