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암을 널리, 널리 알리기

암 커밍아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by 살다보면

암환자가 되었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여유는 많지 않았다.


직장에는 질병휴직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내가 맡고 있던 일들도 급히 마무리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전이 의심이 있는,

기수가 꽤 높은 암 환자였다.

로컬 병원보다는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택해야 했다.


이름난 병원들에 전화를 돌리며 말했다.


— 제가 암 환자인데요, 교수님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암이 어느정도 크기이고, 어디까지 전이가 되었는지

‘암 환자’라는 사실을 여러 번 고백해야 했다.

다행히 명의로 알려진 교수님의 진료를

생각보다 빠른 날짜에 잡을 수 있었고,

그 이후의 치료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고민한다.


숨길 것인가, 알릴 것인가.



나는 알리는 쪽을 선택했다.

병원 예약을 하며 스스로 내 암을 소개하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던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병을 말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 미안해. 나 최근에 유방암을 발견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 얘들아, 나 유방암이라 곧 항암 치료를 시작할 것 같아. 머리카락 빠지기 전에 우리 한 번 보자.


예전의 무덤덤한 나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오히려 지인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직장에서 내 책상 짐을 챙겨 나오던 날, 함께 마중 나와 준 동료들.

암 소식을 듣고 먼 거리에서 달려와 준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단짝, 내 남편


그들의 울음 속에서

나는 오히려 울지 않고 치료받을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암 커밍아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빠질 것이고,

안색은 나빠질 것이며,

직장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 밖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순간도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애매한 순간들을 떠올리니,

차라리 미리 말해두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항암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빠질 눈썹을 대신하기 위해 눈썹 문신을 했고,

아이라인 문신도 했다.

항암 중 약해질 몸을 대비해

프로폴리스 치약,

모가 부드러운 칫솔,

순한 성분의 도브 비누를 사들였다.

면역력이 약해질 상황을 대비해 대상포진 예방주사도 맞았다.


손톱이 빠지지 않게 해줄 영양제도 샀고,

항암 치료 중 병원에서 사용할

커다란 텀블러도 하나 더 샀다.

집 찬장에 이미 텀블러가 가득 있었지만

그래도 또 사야 했다.


아직 항암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가발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어떤 머리가 나에게 어울릴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문신해주는 사장님,

동네 병원 원장님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내 암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 상황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다면

내 암을 알리는 쪽을 추천하고 싶다.


의외로 세상은

암 환자에게 꽤나 따뜻하다는 것을

다른 암 환자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내 부족함과 약함을 보며

달려들고 헐뜯는 사람들보다,

내가 무너져 내렸을 때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고

걱정해 주고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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