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
텅 빈 병원 복도에 앉아,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지만 병원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날의 복도는 유난히 꽉 막힌 숨처럼 적막했다.
그 적막이 내 불안과 슬픔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소리 내 울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물론 아무도 없지만
들키지 않게 울어보려 했다.
하지만 울음은 참아도, 넘쳐 흐르는 콧물은 어쩔 재간이 없었다.
참, 이럴 때도 도움이 안된다.
망할 놈의 비염
- 훌쩍, 훌쩍.
결국 내 슬픔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사실 난 이런 상황에서도 담담할 줄 알았다.
나는 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첫사랑 오빠가 교회 친구와 사귄다고 했을 때도,
임용고시에 0.01점 차로 떨어졌을 때도,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도,
계약직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정규직 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도,
좁은 원룸 현관 앞에서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도
나는 언제나 담담했다.
그런데 ‘암’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그 담담함이 통하지 않았다.
죽음을 곁에 두고 하는 상상은,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나 자신이 아닌
내 딸아이였다.
남편은 성인이니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연로한 부모님도 서로를 붙잡고 의지하실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그 아이는…
그 아이가, 내 모든 슬픔의 무게였다.
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항상 일의 끝을, 아주 먼 훗날까지 상상하는 버릇.
-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대.
- 아휴, 불쌍해서 어떻게하나
사람들의 동정을 가장한 심심풀이 대상이 될 내 아이가 떠올랐다.
- 넌 그런 것도 모르니? 친청 엄마가 없어서 그렇지?
드라마 속에서 튀어나올 법한 말들을
내 딸이 견뎌야 할 미래로 단번에 상상해버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아이의 몇십 년 짜리 인생을 미리 슬퍼하며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도 이렇게 흐느껴 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한차례 울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침 2시간 거리에서 달려온 남편이 헐레벌떡 복도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 왔어? 나 배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울고 나면 배가 고프다. 텅 빈 마음만큼 무언가 다시 채워야 할 것처럼.
남편과 병원 근처 해물탕 집에 들어가서 보글보글 끓는 해물탕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
- 생각보다 빨리 왔네?
- 문어 되게 맛있겠다.
- 오늘 날씨 따뜻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아마 둘 다, 울음 대신 씩씩함을 고집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누가 더 잘 참나 겨루듯이.
쏟아낸 눈물만큼이나 해물탕 국물은 뜨겁고 맛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모른다.
이 2막이 어떤 장면으로 채워질지.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