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를 씹으며 암 결과를 기다리던 날
가슴에 멍울이 있다는 걸 알고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모른 척했다.
-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멈춰서 그런 걸 거야.
- 생리 전이라 잠깐 그런 거겠지.
바쁘다는 이유로, 괜찮을 거라는 합리화로,
그냥 조금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마음 한쪽에서 나는 유방암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려움보다 먼저 찾아온 건, 이상하게도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마침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한 시기였다.
남편과는 주말부부, 잠깐 도와주러 오셨던 친정엄마는 본가로 돌아가시고,
나는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사실은 모든 것이 다 버거웠다.
그래서였을까.
병이 두렵기보다,
병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전, 조직 검사를 의뢰했다.
직장에는 반차를 쓰고 병원 로비에 앉아 내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뭐 하냐?
친구의 메시지가 왔다.
나는 짧게 답했다.
- 소시지 먹으면서 결과 기다리는 중
사실 그게 그날의 내 맘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심장은 쿵쾅거리는데, 이상하게 입안은 짭조름한 소시지를 꼭 씹고 있었다.
불안과 허기가 함께 밀려오던 순간.
사람들은 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울거나 기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냥 평소처럼 먹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같았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소시지라니.
어쩌면 암에 대한 일종의 반항 같은 거였을까?
잠시 후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때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무심한 듯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의사가 말한다.
- 혼자 오셨어요?
그 말은, 큰 병이라는 뜻이다.
내가. 딱 그랬다.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의사가 물었다.
- 혼자 오셨어요?
이 한 문장은 단순한 질문이지만,
침묵을 유지고 슬픔을 예감하게 하는 문장이다.
소나기가 내리기 전, 유난히 차분한 공기 같았다.
어쩌면 의사들 나름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병원에서 먼저 전화가 와
가족과 함께 오라는 말이 없었기에
내가 결과를 아주 약간은 부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결과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고 한들
그걸 혼자 오롯이 마주할 용기는 사실 없었다.
그래서 그 순간은 의사도, 병원도 원망스러웠다.
- 그럴 거면 같이 오라고 알려주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혼자 진찰실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편도, 부모님도 아니었다.
직장 상사였다.
어쨌든 오후에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으니까.
이 상황에서도 직장 생각을 먼저 하는 나는
뼛속까지 직장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