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부작용으로 머리를 밀던 날
유방암 치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독성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유방암 이야기’ 카페의 간증 글들을 보면 두피가 당기고 아프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라고 했다.
항암 주사를 맞고 2주쯤 지났을까?
골골대며 누워있다가 일어나면 고양이 털 빠지듯 내 소중한 머리카락이 열가닥, 스무 가닥 빠지기 시작했다.
내 걷는 걸음걸음 흩날리며 빠지는 머리카락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머리를 밀기로 했다.
사실 이 날을 위한 준비는 모두 되어있었다.
친한 동생이 미리 사준 가정용 바리깡이 항시 옆에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아직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진 않았지만 내 머리를 밀어줄 야매 미용사도 바로 옆에 있었다.
여차하면 쓸 가발도 미리 단발머리로 사두었다.
더 이상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래 지금이다.
- 이젠 안 되겠어. 오늘 머리를 밀어야겠어. 어서 밀어줘
- 지금?? 갑자기??
황당하지만 당당한 나의 요구에 남편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암환자가 된 순간부터 내 요구는 거부하지 않고 일단 받아주는 남편인걸
결국 집에서 남편이 밀어줬다.
옆에는 세 살짜리 아이가 영문을 모른 채 엄마, 아빠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에 앉아 삭발식이 시작되었다.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바닥으로 머리카락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sns에서 보면 가족이나 연인의 머리를 밀어주다가 갑자기 함께 밀며 꼬옥 껴안고 눈물을 흘리던데
차마 남편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었지만 맘 속에 내심 기대감은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 혹시 내 머리 밀고 당신 머리를 같이 밀고 싶어 진다거나 하면 그렇게 해도 괜찮아.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 머리만 밀려있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나 몰래 혼자 울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깎아준 머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뾰족 뾰족하게 올라있는 머리카락들
- 아, 이렇게 짧은 애들은 나중에 빠지고 나서도 샤프심처럼 콕콕 박혀 청소도 힘들다던데
화장실로 가서 남편 면도기로
남은 머리카락들을 모조리 밀어버렸다.
항암 부작용으로 두피에도 뾰루지가 오돌토돌 나있었는데 빨갛게 올라온 뾰루지들을 한 개도 건드리지 않고
맨들 거리게 밀었다는 뿌듯함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 이것 봐, 나 머리 미는데 재능 있는 것 같아!
혼자 안방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남편이 나온 터였다.
이 모든 상황을 멀뚱멀뚱 지켜보던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무 반응이 없어서 오히려 조금 서운했다.
- 이럴 때 보면, 나를 닮아 좀 무던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무덤덤한 아이를 보며 생각해보니 난 그냥 길었던 머리카락을 좀 다듬은 것 뿐이다.
뭐, 아주 좀 ‘많이‘ 다듬었지만.
그래서 이 상황에서 애써 슬픈 마음을 끌어내기보다는 즐겨보기로 했다.
- 아빠가 엄마 머리카락을 가져가버렸어.
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머리를 민 기념으로 셀카를 찍어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냈다.
민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돌아와서 기분이 괜히 좋았다.
내가 보기에도 매끈하게 드러난 민머리가 썩 잘 어울렸다.
- 우리 기념사진 찍으러 가자!
이때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민머리를 해보겠는가.
물론 암이란 녀석이 다시 재발하거나 전이된다면 그때 다시 이 머리를 만나겠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우울하게 보내기보다는 즐겁게 기념하고 싶었다.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 날이면 자주 가던 인생 네 컷 가게에서
그날 우리는 함께 인생 네 컷을 찍었다.
내 머리를, 내 용기를,
그리고 함께 웃어준 가족을 기념하며.
2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그날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그래도 그날이 충격으로 남지 않은 게 다행이다.
가끔 라푼젤 이야기를 보다가
마녀가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 엄마 머리카락은 누가 가져갔지?
그러면 아이는 꼭 이렇게 대답한다.
- 아빠 마녀가 가져갔잖아.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는다.
웃으며, 그날의 슬픔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