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이야기하는가

카타리나 블룸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y Silver Rain

요즘 나는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보여지는 이미지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라는 걸 최근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독서모임에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그 중 신문기자를 살해한 여자,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가 유독 오래 남았다.
읽는 내내 ‘어쩌면 이 상황이 나와 닮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녀의 삶을 ‘사건’으로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그녀는 사회가 정한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가 되었고, 결국 그 이름에 짓눌려 폭발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매일 ‘보이지 않는 카타리나 블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SNS 속 이미지는 늘 완벽해야 하고, 말 한마디의 결이 달라지면 곧바로 왜곡된다.
댓글은 판단이 되고, 판단은 금세 낙인이 된다.
우리는 ‘진짜 나’보다 ‘보여지는 나’로 살아가며, 그 사이에서 서서히 자기 목소리를 잃는다.


오늘 읽은 책에는 화가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치오가 그린 ‘미다스의 심판’이라는 그림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고전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었다.
진실은 감출수록 부풀어 오른다고 했다.

카타리나 블룸의 총성과, 임금님의 귀를 고백한 이용사의 외침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누가 먼저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나의 ‘당나귀 귀’를 세상에 들려주는 일이다.

카타리나 블룸은 그걸 총으로 말했다.
나는 그걸 말이 아닌 ‘쉬프트 소사이어티’라는 실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퇴근 후, 각자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놓았고,
누군가는 잊고 있던 꿈을 이야기했다.
또 누군가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은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대신 진심이 머무는 자리에 모이고, 진실이 오가는 순간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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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쉬프트 소사이어티는 하나의 고백의 장이다.
감추던 이야기를 꺼내고, 스스로를 다시 해석하는 자리.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진짜의 얼굴을 되찾는다.


임금님 귀를 숨기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각자의 ‘당나귀 귀’를 인정하며 살아갈 차례다.

그게, 내가 쉬프트 소사이어티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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