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7) 이걸 피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 피할 수 없는 걸까?
이걸 피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 피할 수 없는 걸까?
하노이에서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왠지 공기 중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는 아이들 얼굴에서도
학원 가방을 양쪽에 메고 뛰는 엄마들 발걸음에서도.
그리고 생각했다.
“한국은… 정말 유난한가?”
그렇다.
우리는 참 유난스럽다.
입학 전에 한글 떼는 건 기본이고
구구단을 유치원에서 끝내야 마음이 편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받아쓰기 틀리면 눈물을 찔끔 흘린다.
이 유난스러움은 중학교, 고등학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학군”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사, 전셋값, 인생 계획까지 재조정된다.
그러면서도 다들
“저는 욕심 없어요. 그냥 애가 행복했으면 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0.5초 뒤에
“근데 요즘 학원 진도 우리 애랑 안 맞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한다.
정말 한국은 참 공부에 진심인 나라다.
그런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유난스러움 덕분에 생긴 것도 있다.
전 국민이 대체로 똑똑하다.
말 그대로 ‘전 국민이 똑똑하다’는 건 과장이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정보 이해력은 꽤 높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무슨 정책 얘기가 나오면
“그건 조세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제 뉴스에 나오는 ‘기준금리’나 ‘디플레이션’도 대충 맥락을 짚고, 누군가 설명하면 “아~ 그래서 부동산이 그랬구나!”라고 이해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현실 감각은 대부분 또렷하다.
TV 토론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회 이슈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있다.
이건 사실 굉장히 희귀한 사회적 현상이다.
다 같이 공부하고 다 같이 긴장하고 다 같이 조급게 모두가 같이 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노이에서는 아이들이 어디든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한국에서는 아이와 다니면서 늘 눈치 보던 나는 이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아, 이게 진짜 아이 키우는 풍경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밀도 높은 교육 열기가 만들어낸
‘함께 갈 수 있는 사회’의 힘도 느껴졌다.
한국은 누구와도 어느 정도는 소통할 수 있고 기초 지식이 공유되어 있다.
전공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기본적인 안전교육이 되어있다.
규율과 규칙이 이해가 되는 사회.
그건 분명 ‘같이 가기’의 효과였다.
물론 이 경쟁이 피곤하다는 것도 알고 이제는 좀 다르게 가는 길을 찾고 싶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 마음속 깊은 곳엔 이 묘하게 질서 잡힌 유난스러움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꼭 이 길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길이 틀렸다고도 할 수는 없다.”
피하고 싶은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있는 것
그게 바로 대한민국 교육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