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 무너질 틈이 없는 사회?
2장. 평준화의 역설
– 바닥도 얕고, 꼭대기도 낮은 구조
무너질 틈이 없는 사회?
한국에서 어디서 “망했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괜히 어깨부터 굳는다.
‘망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그렇다.
그럼 한국에서 망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를 보면 월세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 공부도 못 시키고,
병원도 못 가고,
노숙하다가… 막 친구랑 우연히 마주치고 울고....
이런 장면 많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물론 고단한 삶은 많다.
월급은 빠듯하고,
물가는 미치고,
치킨은 너무 비싸고…..
그래서 속으론 다들 부글부글하지만
진짜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왜일까?
의외의 이유.
우리가 다 ‘일정 이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는 게 돈이냐?”는 말도 있지만, 한국에선 진짜 그게 돈이 된다.
그리고 심지어 기본 생존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인생이 꼬였다고 치자.
직장을 잃고, 통장 잔고는 2만 원, 월세도 밀렸고....
하지만 그 사람도 알고 있다.
“정부지원 뭐 있지?”
“긴급복지? 기초생활보장? 어딘가 신청할 데 있지 않나?”
“마이너스 통장, 서류는 어떻게 떼야하더라?”
이 정도 정보는 인터넷 검색 5분 안에 나온다.
그리고 그걸 해 낼 정도의 문해력, 정보력, 기본 지식이 다들 있다.
이게 바로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다.
제도도 제도지만 사람들이 똑똑해서 스스로 살아남는다.
이쯤 되면 약간 무서운 질문이 생긴다.
“그럼 한국 사회는… 무너질 틈이 없는 건가?”
그렇다.
좋게 말하면 튼튼하고 촘촘한 시스템, 나쁘게 말하면 숨 돌릴 구멍 없는 빽빽한 레이스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평준화’라는 이름의 사회 설계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사교육이 이 구조를 좀 비틀고 있지만 기본 골격은 여전히 “같이 가는 구조”다.
이 말인즉슨,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수준 이상’은 다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몰락에 대한 집단 내성이 생겼다.
“우리 모두 열심히 배웠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 묘한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한국 사회는 ‘바닥 없음’이 기본 옵션이 됐다.
반대로 말하면 쉬는 법도 멈추는 법도 잘 모른다.
힘들어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빚이 있어도 버틴다.
학원비가 감당 안 돼도 줄이긴 싫다.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잖아요…” 이 말 한마디가 가계부와 체력을 함께 흔들고 있다.
그러니 무너지지 않는 건 의지와 정보력 그리고 약간의 오기 덕분이다.
우리는 참 집요하게도 ‘기준 이상’을 유지하는 민족이다.
이건 비꼬는 말이 아니다.
존경스럽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해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다만, 이제는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너무 안 무너지려고 애쓰는 건 아닐까?”
조금 무너져도 괜찮다.
조금 느려도,
틀려도,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기초체력 만렙인 사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