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반려견? 반려인 용어사전(2)

내로남불, 몸소 겪어내 봐야 온전히 보이는 것들

by 무지언니

막 개린이 시절을 지나 성견이 된 무지는 집 밖에만 나가면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입니다 - 집에서는 그저 선비같은 강아지지만. 3시간 산책으로도 끄떡없는 무지의 넘치는 에너지를 한방에 해소해 주는데는 등산만한 좋은 방법이 또 없지요. 무지는 주로 가족들과 또 때로는 제 친구들과 함께 종종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혹시 청계산에서 무지를 마주친다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무지와 첫 등산을 갔던 날 겪은 일화입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도 많이 있으시겠지만, 장담컨대 오늘만큼은 이 구역의 '관종'이 되고 싶다면 무조건 반려견을 데리고 등산을 가시길 추천(?) 드리겠습니다. 그 날도 무지는 모두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신나게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스피츠아냐? 진도? 아닌 거 같은데?

무지와 산책을 다니며 무지의 '특별한' 생김 덕분에 종종 무지가 무슨 종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았기에, 여기까지는 대수롭지 않은 관심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 우리를 앞질렀던 그 무리는 먼저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었는지 다시 한번 우리와 마추쳤고, 이번엔 제게 직접 말을 걸어왔습니다.


무지등산.JPG
이 개 스피츠 아니에요?
거봐, 똥개맞다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중립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또 귀여운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요. (종종 저도 무지를 '우리 똥강아지'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만큼은 무지를 '똥개'라고 부르는 그 단어 사용에 말 그대로 '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뒤늦게 "똥개 아니에요." 라고 덧붙여 주었지만 이미 관심을 거둔 무리는 속절없이 우리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지를 입양한 초반, 남편과 저는 알게 모르게 '의식있는 반려인'에 대한 묘한 집착과 약간의 자부심 같은 것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또 자세히 해보기로 하고. 아무튼 여기에는 '의식있는 단어사용' 같은 것도 암묵적인 룰로 포함되었는데, 예를 들어 가능하면 애완견 대신 반려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식이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언어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깨에 힘 좀 들어간, 일종의 자기 만족을 위한 행동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서 무지와 첫 등산에서 겪은 일을 계기로 하여 진심으로 제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신중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 가짐을 바꾸고 나니, 새삼 흔히 사용되는 표현 중에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말들이 생겼습니다. 주변에서 종종 듣게 되는 말 중에 '강아지를 사오다, 고양이를 사러가다' 라는 표현들이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펫샵과 같은 입양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입양하다'라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데려오다'라는 표현으로만 순화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물론 뭐 그렇게 진지하고 어렵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리라 생각하고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어떤 면에서는 조금 고지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지식한 저는 '언어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신뢰합니다.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제는 도둑고양이라는 표현보다 길고양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것처럼.


그렇다고 제 앞에서 이런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라. 경고를 보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웃음) 일일이 따져가며 주변에 설교를 늘어놓는 프로불편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몸소 겪으며 느낀 바를 제 스스로 실천하려는 것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저 또한 제가 완전히 무지한 영역에서는 저도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아니 분명히 언제 어디선가 저질렀으리라(?) 확신합니다. 다만, 자꾸 듣다보면 귀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고 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처럼 저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반려동물과 관련해 조금 더 긍정적인, 그리고 애정이 담긴 말들을 많이 접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딱 이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꼭 이렇게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무엇보다 저는 무지와 함께 하며 반려동물이 주는 큰 행복을 매일매일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대상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섬세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겠죠. 덕분에 오늘도 우리 가족은 무지를 위해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지, 언니가 오늘 좀 오글거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