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를 가다 (3)

임원준이 뇌물을 바치고 벼슬 얻은 일과 약을 훔친 일을 실록으로 살펴라

by 두류산

3장


다음날 경연에 참석한 한명회는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용은 선비를 좋아하여, 한 가지 재주만 있으면 모두 문객(門客)이 되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세조께서 명나라에 가실 때, 임원준이 의술을 잘하고 문장이 좋아서 데리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용이 이를 싫어하여 임원준이 약재를 도둑질하였다고 고변하였습니다. 형조에서 장차 중죄를 가하려고 하자, 세조께서 임원준으로 하여금 도망하게 하였는데, 일찍이 말씀하기를, ‘내가 아니면 임원준은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약을 훔쳤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하셨습니다.”


임금은 한명회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지금 약을 훔쳤다고 말하는 양관의 관원들이 어찌 세조께서 일찍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황수신에게 뇌물로 벼슬을 얻었다는 일은 참으로 그러하오?”

"황수신의 일도 옳지 않습니다. 임원준은 젊어서부터 의술로 이름이 있어서, 이것으로 황수신에게 벼슬을 얻은 것이지, 뇌물을 바치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임금은 안도했다.

‘젊은 관원들이 임원준의 일을 잘 모르고 무고한 것이 아닌가.’


이때 사헌부 집의가 나섰다.

"임원준이 민발과 더불어 토지를 걸고 내기 바둑을 두었고 또 싸우기까지 했으니, 이것은 선비로서 할 바가 아닙니다."

"홍문관의 젊은 관원이 이 일을 말하였으나, 도박했다는 것도 아마 풍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금이 임원준을 위해 변호하자, 대사간이 아뢰었다.

"임원준이 민발과 더불어 토지를 걸고 내기를 하였으므로 그때 국문하기를 청한 자가 있었으나, 주상께서 대신인 까닭으로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찌 거짓된 일이겠습니까?”


임금은 좌우의 대신들에게 물었다.

"임원준이 김정광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일은 참으로 그러하오?"

경연의 영사(領事) 노사신이 나서서 아뢰었다.

"신이 임원준과 더불어 한 때 의금부의 일을 겸직하였는데, 김정광이 죄를 지은 일이 드러나서 국문할 때 임원준이 죄를 가볍게 논한 까닭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었습니다.”

임원준에 대해 불리한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임금은 더 이상 묻기를 멈추었다.


한명회가 다시 나섰다.

"다른 일은 신이 알지 못하나, 약을 훔친 것은 진실로 애매합니다. 대왕대비께서도 자세히 아십니다.”

노사신이 나서서 아뢰었다.

"당시에 신이 듣기를, 이용이 임원준을 시켜 약을 짓게 하고 종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종이 마침 용변을 보고 돌아오자 약이 없어진 것을 보고, 임원준의 상투를 수색하니 주사(朱砂)가 많이 있었고, 임원준의 소매를 수색하니 거기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주사(朱砂)는 경련과 발작을 진정시키는 데 쓰는 수은으로 만든 귀한 한약재였다.


성종은 서로 다른 진술을 들으니 임원준의 일에 대해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실록(實錄)》을 살펴보아 기록이 있으면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은 승정원에 명하였다.

"임원준이 도승지 황수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얻은 일과 이용의 집에서 약을 훔친 일을 춘추관으로 하여금 《실록》을 살펴보게 하라. 또한 임원준의 일을 의정부의 증경(曾經) 정승과 육조의 판서 이상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증경(曾經) 정승은 구 정승과 현 정승을 모두 칭했다.

왕의 명을 받고 구 정승과 정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빈청에 모여 의논하였다. 대신들은 임원준과 같은 세조 때의 훈구대신으로 팔은 안으로 굽었다. 한명회가 대신들의 의견을 모아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용의 집에서 약을 훔친 일은 신이 일찍이 친히 아뢰었으며, 뇌물을 바친 일은 비록 있었을지라도 선왕(先王)께서 이미 벼슬길을 허락하시어 육조의 당상관이 되고 의정부의 대신까지 되었으니, 다시 거론할 수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정창손과 다른 대신들도 한명회의 의견에 동조했다.


성종은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명했다.

“이제 와서 임원준의 혐의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겠다. 춘추관은 임원준의 일에 대해 실록을 상고하는 것을 멈추어라.”


임원준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한명회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나섰다. 한명회는 원한이 사무치던 유자광을 작심하고 공격하였다.

"유자광은 김언신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으나, 함께 의논한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두 사람을 국문해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성종은 한명회의 청을 받아들였다.

“의금부는 유자광과 김언신을 잡아들여라!”


의금부는 명을 받고 의금부 도사와 나졸을 유자광과 김언신의 집으로 출동시켰다.

유자광의 집에 느닷없이 의금부 지사와 나졸들이 들이닥쳤다.

“죄인 유자광은 냉큼 나와 어명을 받으라.”

의금부 지사의 큰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놀라 웅성거렸다. 유자광이 방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섰다.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지만 의금부 지사에게 물었다.

“어명이라니, 무슨 일이오?”

“어명이오. 죄인은 냉큼 내려와 어명을 받으시오.”

“주상께서 나를 잡아들이라 하셨다는 말이오?”

“그렇소.”

“알겠소. 짚이는 것이 있소. 나에게 조금 시간을 주시오.”


의금부 지사도 유자광에게 야박하게 굴지는 않았다. 유자광은 급히 지필묵을 챙겨 임금에게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신은 성품이 본래 뜻만 크지, 식견이 좁고 고집스러워 악한 것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고, 남의 착하지 못한 것을 들으면 능히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남이 꺼리는 바를 피하지 않으면서 우러러 성청(聖聽)을 모독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벼슬이 극진하고 또 부유한데,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꺼리는 말을 하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아니하겠습니까? 김언신이 아뢴 말이 신의 상소와 같은 것을 가지고 서로 의논하여 아뢴 것이라고 하는데, 신은 진실로 함께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비록 불초(不肖)할지라도 대강 의리를 아는데, 감히 남의 의논을 듣고 남의 말에 따라서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말하겠습니까?”

유자광은 아들에게 상소를 승정원에 접수시키라고 당부하고,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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