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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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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May 15. 2024

어버이날 며느리를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했다

 2024년 5월 12일, 어버이 주일을 맞은 일요일 교회. 오프닝으로 일제 강점기 목사님 두 분이 작사 작곡했다는 어버이날 노래(어머니 노래)를 예배 참석자가 함께 불렀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노래를 부르니 가슴 한켠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구절에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는 며느리의 안쓰러운 모습이 그려졌다.  


 고열로 얼굴에 발진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잠 못 이룬 손자와 밤새 아기를 돌보며 애태웠을 며느리. 겹쳐서 아들을 살리고자 여러 밤을 잠 못 이루셨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유아시절 우리 가족은 새로 단장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당시 페인트는 유독 납성분이 포함되어 갓난아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첫돌 사진 나의 모습은 분유광고 아기모델처럼 건강아였다. 새집증후군은 나의 기관지를 심각하게 상하게 하여 감기에 쉽게 노출되고 몸을 병약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곧 죽을 아이니 정을 떼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의 아들을 살려내었다. 몸에 불덩이처럼 열이 나면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자는 의사를 깨웠다. 백일 동안 기침을 한다는 백일해와 기관지 천식을 고치기 위해 동의보감에 효험이 있다는 약은 다 해 먹였다.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을 다녀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도립병원이 있는 큰 도시에 기차에 태워 데려갔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이 세상에 살아남았겠는가? 1년 7개월 된 손자는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구사일생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다. 그때마다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구했다.


 지난 주말에 아들 내외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손자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이는 에너자이저로 지칠 줄 모르고 놀았는 데...  다음날 어린이 집에서 조퇴를 했다. 몸에 열이나 엄마를 찾았다는 거다. 그 후 일주일간 ‘괜찮아졌다’와 다시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반복했다. 아이가 열도 높고 배도 동시에 아픈데 동네 소아과의 처방에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른 소아과를 찾아보기도 했다.  


 얼굴에 발진이 날 정도로 체온이 오른 아이를 돌보느라 밤새 잠을 못 잔 며느리. 출산이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은 아이를 뱃속에 두고 얼마나 힘이 들까. 아들 집을 찾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는 사이 엄마 아빠는 쉴 수가 있어 아들이 와달라고 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는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는 아이를 달래어 해열제 시럽을 어렵사리 먹였다. 체온을 재어보니 많이 좋아진 듯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돌보며 밤새 힘든 시간을 보낸 며느리의 등을 침실로 떠밀어 잠을 보충하게 하였다.  아들도 쉬게 하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여러 자동차와 동물, 과일들 이름 맞추기와 스티커 놀이를 하였다. 할머니가 포도를 잘게 잘라 주니 더 달라고 하며 맛나게 먹었다. 아이 몸의 열기를 식히려고 따라다니며 부채질을 했다.


아이가 드디어 낮잠이 들어 좋아지리라 기대했는데 아프다고 울면서 잠을 깼다. 그새 다시 체온이 올라 고열로 얼굴에 발진과 함께 이번에는 수포까지 생겼다. 누구 하고도 잘 지내 사회성이 좋다고 칭찬 받든 아이가 몸이 아프니까 달라졌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빠가 안아서 달래고자 해도 엄마만 찾았다.


엄마가 결국 일어나 체온을 재니 39도나 되었다. 다시 한번 어렵사리 해열제를 먹이니 37.5도 정도까지 돌아왔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태권도 동작도 보이고 아일리시 댄스도 하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저녁을 먹고 밤이 되어 집을 나서면서 아이와 뱃속에 둘째를 가진 며느리의 건강을 지켜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교회 가기 전 손자가 궁금해서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온 곳은 놀랍게도 대학병원 소아 응급실이었다. 밤에 해열제를 먹고 열이 내려 잘 자는 듯한 아이가 새벽에 울며 엄마를 찾았다. 급히 체온을 재니 무려 40도였다. 온 얼굴에 발진과 수포가 났고, 옷을 벗겨보니 팔과 가슴, 등과 엉덩이 부위까지 온몸에 열이 올라 붉게 물들었다. 일요일 아침 엄마는 아이를 안고 대학병원 소아과 응급실로 달려갔다. 동네 소아과에서도 월요일까지 열이 계속되면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던 터다.


병원에서 복통의 원인을 찾고자 초음파 검사를 하여 뱃속 상태를 살피고 피검사를 하고 수액을 놓았다. 열이 올라 발진 날 때 가슴의 모세혈관이 터져 증세가 완화되어도 붉은 점이 비쳐 우려를 자았다. 자칫 골든타임을 놓쳤으면 큰 일 날 뻔하였다. 엄마의 헌신과 사랑으로 고열로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했다.   


 교회에서 어머니 노래를 부르며 밤새 고생했을 며느리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두 손 모아 손자와 며느리를 위해 기도했다. 교회에 다녀오니 며느리가 페이스톡으로 아이가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내 병약한 어린 시절 거친 호흡으로 자는 모습을 가슴 조이며 지켜보았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난히 그리운 어버이날 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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