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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들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 감상기

by 두류산

폭염이 아스팔트를 녹이고, 매미 소리가 쉼 없이 울려 퍼지는 한여름. 클래식 모임에서 DVD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이 연가곡은, 차가운 겨울 들판을 떠도는 나그네의 외로운 여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외로움과 상실을 노래한다.


바리톤 요르마 하인이넨의 목소리는 마치 잔설 위를 스치는 겨울바람에 살을 에는 듯한 아픈 감정을 드러냈으며, 랄프 고토니의 피아노는 고독한 나그네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그림자처럼 섬세하게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하모니는 황량한 겨울에 움츠린 가슴을 떨며 떠도는 나그네의 정서를 섬세히 그려냈다.


24곡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을 단 한 번의 쉼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감동이었다. 중간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구성은 뮐러와 슈베르트가 의도한 감정의 서사를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곡과 곡 사이의 미묘한 여운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노래에 빠지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이어지는 또 다른 고독의 서사들은, 마치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는 나그네의 여행을 따라가는 듯했다.


더욱이 이 감상은 한겨울 풍광을 배경으로 한 박물관에서의 실내 공연이라는 독특한 무대 연출 덕에 더욱 극적인 몰입을 가능케 했다. 현실은 폭염과 열대야에 지친 여름이지만, 화면 속 눈 덮인 겨울 숲과 얼어붙은 개울, 눈 위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겨울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감정의 냉기는 한여름의 숨 막히는 더위를 잠시 잊게 하는 정신적 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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