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동서원(道東書院)에서
정문 누각인 수월루(水月樓) 뒤로 몸을 낮춘 채 서 있는 환주문(喚主門). 갓을 쓴 선비가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낮은 문이다. ‘마음의 주인을 부르는 문’이라는 의미를 새기며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숙여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내 마음이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저 바람에 떠는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존재인가? 나는 바람인가 나무인가? 내가 배운 것이 진정 나의 삶에 드러나고 있는가? 물음의 작은 파도가 점점 커져서 큰 물결이 되었다.
도학의 산실이라 불려 온 경상도, 수많은 거유(巨儒)를 배출한 그 땅에서 내가 마주하려는 이는 자신을 ‘소학동자(小學童子)’라 낮추어 부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었다. 대원군의 철폐령 속에서도 남아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도동서원.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라는 이름처럼 절제된 기품으로 다가왔다.
낙동강 물줄기가 유유히 돌아 흐르는 대구 달성의 산기슭, 도동서원(道東書院) 앞에 섰을 때 물음이 조용히 일었다. 책장은 넘쳐나도록 채워지고 지식은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정작 일상은 왜 배운 대로 살지 못하는가. 그 물음의 답을 찾고자 조용히 발걸음을 들였다.
서원의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기단은 마치 어머니가 한 땀 한 땀 기워 낸 조각보처럼 섬세하면서도 포근했다. 기둥마다 둘러싸인 흰 띠 '상지(上紙)'는 이곳에 모신 분이 동방오현 중 으뜸인 수현(首賢) 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내 마음을 파고든 것은 따로 있었다. 선생이 마흔이 넘도록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책, 어린이를 위한 수신서 <소학(小學)>이었다.
"소학동자가 어찌 대의(大義)를 알겠습니까."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김굉필 선생은 자신을 늘 그렇게 낮추었다. 스승 김종직을 처음 만나 권유받은 책이 사서삼경이 아니라 <소학>이었을 때, 그는 어린 시절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성현이 말한 우주도, 인간의 도리도, 모두 배운 바 ‘실천’ 위에 서 있음을. 마당을 쓸고, 부모를 공경하며, 몸가짐을 바로 세우는 일상이야말로 학문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감격에 겨워 그는 붓을 들었다.
“글공부를 업으로 삼고도 하늘의 이치 몰랐는데,
소학(小學)의 글에서 지난 잘못 깨달았네.”
그 구절을 떠올리며, 나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좀처럼 오르지 않던 수학 성적.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겠다며, 나는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처럼 동경대 입시 기출문제를 수록한 수준 높은 문제집에 매달렸다. 한 문제에 삼십 분, 때로는 한 시간씩 씨름하며 공부 시간의 반 이상을 수학에 투입하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믿었으나, 기본은 허술했고 쉬운 문제조차 자주 틀렸다. 많은 시간을 쏟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그 아쉬움의 뿌리가 ‘기본’의 결핍이었음을, 나는 김굉필 선생의 소학 공부에서 또렷이 확인했다.
선생은 새벽닭 울음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단정히 앉아 <소학>을 읽는 일상을 평생 이어갔다. 높은 담론보다 기본에 충실하고, 배운 바 실천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나를 깨웠다. 배움이 삶으로 드러나는 일은, 배운 대로 일상에서 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쳤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가지런히 개기,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먼저 건네기,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기... 이런 일들이 내 마음의 주인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리라.
환주문을 나서며, 외부로 향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을 거두고 내 안의 주인을 찾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살고 있는지 가만히 돌아보았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을 깨우며 속삭였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배우는 학동’이 되자.’
‘지난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실천이 나의 모습임을 자각하자.’
서원 뒷산 다람재에 올라 내려다보니, 도동서원은 낙동강을 병풍처럼 끼고 평온히 앉아 있다. 강물은 말없이 흘러가며, 여전히 나에게 묻고 있다.
“과연 기본에 충실하며, 배운 대로 자신을 드러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