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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07. 2021

평생동안 꾸준히 인정받기 (조동익 - 푸른 베개)

스무 살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아직 청년이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그는 내 동종업계의 기능올림픽 금메달 선수였다. 인터뷰에서 금메달리스트로 발표되던 그 순간 밀려오는 눈물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던 이야기를 긴장한 기색도 없이 웃으며 하는 그의 모습은 성숙을 넘어 노련한 대가로 보일 정도였다.


학창 시절의 나는 항상 수학에 약했던 터라 가장 많은 시간을 수학에 투자했지만 정확히 남들만큼만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언제나 성적은 투입 대비 변변치 못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특별한 나' 자의식을 갈무리하고 부족함에는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씁쓸히 어른이 되어갔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세계 1등은 언감생심, 그나마 직장에서라도 조금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마저 입사 6개월 만에 산산이 부서지면서 그렇게 또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씁쓸히 어른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사내TV 화면 속 금메달리스트 소년을 보면서 새어 나오는 부러움과 시기심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일평생  번의 메달도 쉬운 일이 아닐진대 하물며 자신의 분야에서 거의 평생을 꾸준히 인정받는 일은 지구 상에서도   되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이다. 예술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가 전성기라고 부르는 일정한 시기에 일생의 역작을 남기고 다시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거의 모든 예술가들의 얘기다. 예술이 다른 분야와 비교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예술은 자신의 창조력을 총동원해 자신이 아니면 만들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해내는 일이며,  작품을 위대하게 만드는 법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9년에는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던 뮤지션이 있었으나 2020년은 그렇지 못했던 탓에 조금 늦게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바로 조동익 씨의 2집 푸른 베개가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부문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었다는 것.


1980년 조동진 2집의 수록곡 '어떤날'로 데뷔한 베이스연주자 조동익은 1998년에 시작해 10년 주기로 재선정되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서 언제나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뮤지션이다. 1986년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결성한 그룹 어떤날의 1집과 2집, 1994년 본인의 1집, 그리고 기타리스트 윤영배와 함께 제작한 장필순의 5집, 6집이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 올라있다.


1980년대 조동익은 형 조동진의 소개로 음반사 동아기획에 영입되는데, 처음에는 동아기획 소속뮤지션들에게 자신이 쓴 곡을 주면서 음악활동을 펼쳐나갔다. 동아기획 소속 뮤지션들은 조동진이 주도하는 노래모임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곡을 나눠 부르고, 선물하는 등 마치 동아기획이라는 큰 그룹 안에서 유닛 활동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 같은 교류 속에서 조동익은 들국화의 최성원을 통해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만나 프로젝트 그룹 어떤날을 결성한다.


조동진이 뮤지션들과의 노래모임을 주도하며 포크 음악에 집중하면서 우리말 작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조동익은 당시 퓨전재즈 Jazz Fusion 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동아기획 소속뮤지션 중 적잖은 수가 재즈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특히 연주자들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재즈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재즈계에서 1980년대는 록의 특징인 단순하고 강렬한 드럼 비트와 전기악기 사운드를 재즈로 풀어낸 퓨전재즈가 완전히 무르익은 시기. 퓨전재즈 음악가들은 더 이상 록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전기 기타, 이펙터, 신디사이저 등 전기 사운드를 폭넓게 이용하면서 이것이 퓨전재즈의 핵심적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던 재즈뮤지션으로는 키스 자렛 Keith jarrett,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팻 메시니 Pat Metheny, 에버하르트 베버 Eberhard Weber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떤날의 음악세계는 한국 대중가요 스타일과 조동진 류 포크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와 함께 특히 팻 메시니 그룹 PMG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재즈기타리스트로 일컫는 팻 메시니. 1978년 피아니스트 라일 메이스 Lyle Mays 와 결성한 팻 메시니 그룹은 1980년대 가장 핫한 퓨전재즈 그룹이었고, 이들이 들려준 봄날 햇살처럼 따듯하고 아름다운 포크 재즈는 수십 번의 그래미어워즈 수상이 증명하듯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베이스 조동익과 기타 이병우는 팻 메시니의 음악에 깊이 심취해있었고, 어떤날 해체 이후 조동익과 이병우의 솔로 활동들, 그리고 영화음악들 속에서도 여전히 팻 메시니의 짙은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상 현재까지도 이들이 한국에서 팻 메시니 스타일을 가장 잘 구현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어떤날이 두 장의 음반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 이후 1992년 조동익은 형 조동진과 함께 동아기획에서 독립해 하나음악(하나뮤직)을 설립한다. 하나음악에서 조동익은 본인의 1집 '동경'을 발표한 것 외에는 본인 활동보다 한 발 뒤에서 소속 뮤지션들의 음반 제작에 열중했다. 그러는 중에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의 기타리스트 윤영배와 함께 가수 장필순의 5집과 6집을 완성했고, 이 시기 본인의 1집을 포함한 세 장의 음반 모두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 수록되어있다.


조동익 1집이 본격적으로 팻 메시니의 짙은 영향을 자처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2000년 전후 장필순 5집과 6집 활동에서 조동익은 팻 메시니 그룹 스타일의 퓨전재즈에서 멀어지고 잔잔하고 따스한 포크음악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필순의 대표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나 '풍선', 6집의 '고백', '햇빛' 등 잔잔함과 따듯함이 묻어 나오는 곡들은 모두 조동익의 곡이었다.


2003년 재정문제로 완전히 폐업한 하나음악. 조동익은 제주에 거주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던 윤영배의 권유로 장필순과 함께 제주로 이주하면서 완전한 부부관계를 이루었고, 이후 조동진 내외를 포함, 하나음악 식구들 여럿도 이들을 따르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공백기가 10년을 바라볼 때쯤, 2013년 하나음악 동료 뮤지션들에게서 선물 받은 곡들을 담은 장필순 7집으로 두 사람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분투하던 것이 이들 부부의 음악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조동익은 2002년 장필순 6집에서부터 조금씩 일렉트로닉을 가미해오다 장필순 8집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상악기 위주의 작업을 시작한다. 여기서 멜로디보다는 잡음, 기계음, 소음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것이 주변의 세계를 둘러 감싸는 공간감을 자아내면서 그렇게 조동익은 앰비언트 Ambient 의 세계로 건너온다.


트렌드에 뒤쳐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나 형이나 했던 것 또 하는 제자리걸음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둘이 합이 잘 맞으니까 몇십 년 같이 음악을 할 수 있었겠죠. 만약에 누군가 더 대중적이고 우스운 말로 현실도 직시하면서 음악을 하려고 했으면 분명히 마찰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했다기보다는 그냥 둘이 그런 점에서 맞는다는 거죠. (중략)

동익이 형은 어쩌면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의식하지 못했고, 그걸 들은 사람들이 기계음인데 자연 속에서 나는 소리를 넣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중략) 이런 기계음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소리로 뽑아보자고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둘이 "이 소리 되게 좋다" 이러면서 고른 소리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이 얘기하더라고요.

장필순 8집 인터뷰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photo by kimdotae

팻 메시니의 음악에서부터 따스한 포크와 현재의 앰비언트까지. 조동익은 성공적이었던 기존 스타일을 모두 버리고 다른 음악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매번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가면서도 조동익 음악세계의 중심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아마 보편적인 한 인생사 안에서의 평범한 생각과 그걸 담아낸 소박한 가사, 이를 통해 전해지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16년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 (편곡, 믹싱), 2018년 장필순 8집 '소길화' (작/편곡, 제작, 믹싱)와 함께 1집 이후 26년 만인 2020년 조동익 2집 'Blue Pillow'까지 우리는 조동익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모두 그 해의 한국대중음악상을 거머쥐었다.


2020-2021년을 거치면서는 조동익 2집과 장필순의 'Soony Re:work', 'Reminds 조동진', 그리고 올 6월 발표한 정규 9집 'Petrichor' 까지, 공백기에 대한 보상심리라도 작용한 듯 유례없는 다작을 보이고 있는 이들 부부. 물론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작업할 수 있었던 결과란다.


평생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기복 없이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는 조동익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손색없을 뮤지션이다. 이들 부부에게 최근 몇 년간 조동진 내외를 향한 짙은 상실감이 음악 속에 녹아있었던 것도 장필순 9집에서는 이제 남겨진 자들의 앞을 향한 보다듬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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