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쓰기

글쓰기

by 남희경

글쓰기는 두려움을 맞이하는 일이다.

하얀 종이가 주는 압도감,

첫 문장을 앞둔 손끝의 망설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멋지다며 치켜세워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별 것도 안 했는데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어깨가 으쓱해진다.

'작가'라는 직업은 왠지 뿔테안경을 쓴 지적인 이미지에 근사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사실 작가는 그리 멋있는 직업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면 쓸수록, 더 멋없게만 느껴진다. 글은 가장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글은 나를 부수는 작업이다.


글은 자기 고백이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마저

솔직한 감정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도 그런 일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행복했다, 즐거웠다는 식이다. 그러면 기분이 정말 찝찝하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 마냥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우리는 척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행복한 척, 멋있는 척, 괜찮은 척.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습관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진짜 내 모습이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언제나 감정을 숨기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럼 나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억눌러왔던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이는 만성 스트레스가 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그래서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나의 감정을 돌보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나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글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을 끝맺은 후에는 분명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추상적인 것을 명료화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건 활자 위로 나의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 불필요한 생각을 걸러내지 못한 채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쓸데없는 생각은 비우고 머릿속이 명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들을 꺼내어 보다 보면 나만의 주관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또한 글은 내 안의 창의성을 깨워준다.

타자를 치거나 직접 손글씨를 쓰면서 손에서 오는 감각에 몰입하다 보면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던 생각이나 일상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이 실질적인 영감으로 발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는 무수한 생각 중 의미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멋진 작품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글은 손쉬운 성취다

글은 접근성도 용이하고 보상도 즉각적이다. 종이와 펜, 혹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 있으면 언제 어디든지 쓸 수 있고, 글자를 배운 사람이라면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 하얀 종이 위의 나는 자유롭고, 그 자체로 평가되지 않으며,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만 봐도 상관없다. 또한 글의 형식은 다양하고, 새로운 형식에 열려있으며, 계속해서 변모한다.


글은 발전적이다. 쓰면 쓸수록 는다.

표현력과 가독성이 눈에 띄게 좋아질 뿐 아니라,

점점 자기만의 색을 찾아 고유한 나만의 문체가 드러난다. 글은 쓰기만 해도 보람되고, 타인에게도 인정받기 쉬우면서, 앞으로 점점 발전해 간다는 점에서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듬어가는 글의 속성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쓰면 쓸수록 분명히 더 잘 쓰게 된다. 글쓰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소소할지 몰라도, 단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의미가 생기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감동이 피어나기 때문에.

누구나 특별하지 않지만, 동시에 특별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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