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증

미적지근한 건 싫어!

by 남희경

일상의 작은 불편함들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의 바닥이 고정되지 않아 음식이 회전하지 않아도, 서랍장이 삐그덕거려도, 드라이기가 고장 나도.. 그냥 그런 채로 산다.


그건 오래전부터 나에게 익숙해져 온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체화된 것이다.


내 안에는 자주 싫증이 일어난다.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지긋지긋함.

변하지 않는 것을 탓하기보다는 받아들임.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싫증을 꾸역꾸역 참아가면서,


우리 집은 촌에 있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 놀려면 버스를 타고 1시간은 나가야 했다.

버스 배차간격도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인내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내게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길러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들 앞에서

나는 그저 그런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늘 그런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꿈꿔왔다.


공상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상주의자로서

어떤 불편도 어떤 싫증도 어떤 억압도 없는

자유롭고 편안하고 즐거운 어떤 유토피아를 꿈꿔온 것 같다.


그러나 어딜 가든 불편은 따라왔다.

편리함을 쫓아 달려가는 시대상과 다르게

편리는 또 다른 불편을 낳았고...

결국에는 불편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향하는 사람이다

내 생활 방식과 일관되듯이


몸에 갇혀 있는 영혼이 나를 꺼내달라고

매일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싫은 감정은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든다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함을 연기하다 보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게 되기도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다르다

알고 싶은 것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궁금한 것은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가끔은 그런 집요함 때문에 피곤하다.


오늘은 그런 싫증에 대한 이야기다.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털어놓는 푸념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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