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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10. 2023

『삼성기』(三聖記) 上

안함로(安含老) 찬撰

한국사의 국통 맥을 세우는 근간 [삼성기]

 [삼성기] 상편과 하편, 두 권의 삼성기는 인류의 창세 역사와 잃어버린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근간이 됩니다. 특히 삼성기(상)는 신라를 크게 부흥시킨 진흥왕의 손자인 26세 진평왕(제위 579~632) 시대에 쓴 책으로 현존 사서 중에 우리의 국통 맥을 밝힌 가장 오래된 사서입니다. 불과 4쪽 남짓한 짧은 글이지만, 이 기록은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에서 배달, 고조선, 북부여를 거쳐 고구려와 신라에 이른 한민족사의 맥을 압축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환국과 배달에 대해 삼성기 上보다 좀 더 세밀히 전하는 삼성기 下는 환국의 열두 나라 이름과 배달의 18세 환웅천황의 이름, 재위 연도까지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북아에 세운 한민족의 첫 왕조가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한 ‘배달’ 임을 밝힌 삼성기 상과 달리 삼성기 하는 환웅천황이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도착한 곳이 ‘신시’라는 사실만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성기 하는 환국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의 인류 역사, 즉 현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환국의 실존에 대해 삼성기 상이 “吳桓建國이 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라고 선언한 것을, 삼성기 하는 昔有桓國(옛적에 환국이 있었다)“이란 말로써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특히 석유환국, 네 글자는 [삼국유사]<고조선기>에서도 선언되는 한국사의 기원에 관한 명구입니다.

또한 삼성기 상에선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셨다 “라고 약술한 것을 삼성기 하는 천자의 자리를 노리고 군사를 일으킨 서방족 헌원을 배달의 치우천황이 탁록 벌판의 대전쟁에서 무릎을 꿇려 신하로 삼았음을 기록하여, 배달겨레가 청구를 개척한 과정을 자세히 밝혔습니다.

『삼성기』 상은 안함 법사가 도통을 하고서 동방 한민족의 시원 역사의 맥, 한민족의 국통國統, 즉 나라의 계보를 바로 잡아 써놓은 것입니다. 그 국통 가운데 첫 번째 나라가 환국桓國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성기』(三聖記) 上


조화신의 만물화생과 환국의 개창

吾桓建國 最古 有一神 在斯白力之天

오환건국 최고 유일신 재사백력지천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生萬物 

위독화지신 광명조우주 권화생만물

<해설>

우리 환국의 건국은 한 분의 신(有一神)이 이루셨으며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한 분의 신이 아주 밝은 하늘에 계셔서 스스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으로 온 우주를 비추고 권능(權能)과 조화(造化)로서 만물을 낳으셨다. 


❖모든 인류의 창세역사는 환국에서 시작되었다. 환은 밝을 환자이며, 환국은 광명의 나라란 뜻이다. 광명은 대우주의 본성이다. 또 우주를 주재하시는 삼신의 본성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인간이 마음의 광명을 연다는 것은 천지자연과 하나 되고 삼신과 하나 되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의 주재이며 삶의 최종목표이다. 모든 종교와 수행의 결론도 마음의 광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궁극목표는 지상에 광명한 세상을 여는 것이다.


長生久視 恒得快樂 乘遊至氣 妙契自然

장생구시 항득쾌락 승유지기 묘계자연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무형이현 무위이작 무언이행 

<해설>

영원히 사시면서 언제나 변치 않고 기쁨의 조화경계에 머무르시며, 지극한 조화기(氣) 운을 타고 노닐며, 스스로 그러함과 오묘하게 어울리시면서, 형체가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天), 행(行)함이 없이 이루며(地), 말없이 교화를 행(太)하였다.

❖일신이 세 가지 작용을 하는 것을 이야기함.

❖동학을 창도한 최수운은  '내승유지기를 유신령內有神靈하고 외유기화外有氣化라'고, 여덟 글자로 말을 했다. 안으로는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는 기로 꽉 차 있어, 그 기의 조화가 있다는 뜻이다. 신이 지기를 타고 하늘과 땅과 인간과 만물과 역사를 구성한다는 말이다. 이 지기사상이 동학에서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으로 나타난다. 그다음이 '묘계자연'이다. 이는 '진실로 오묘하게 스스로 그러함을 따른다'는 뜻으로, 선가 또는 도가에서 쓰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한자말 자연自然의 본래 의미는 '스스로 그러함'이다. 

'천지자연天地自然'이란, '하늘과 땅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 

일강동녀동남팔백어흑수백산지지 

於是 桓因 亦以監羣 居于天界 掊石發火 

어시 환인 역이감군 거우천계 부석발화

始敎熟食 謂之桓國 

시교숙식 위지환국

是謂天帝桓因氏 亦稱安巴堅也

시위천제환인씨 역칭안파견야

傳七世 年代 不可考也 

전칠세 년대 불가고야 

<해설>

어느 날 동녀동남 팔백 명을 흑수(흑룡강) 백산(태백산-지금의 백두산) 지간에 내려 보내셨다. 이에 환인이 하늘의 뜻에 따라 통치(감군) 하시었고, 부식돌로 불을 만들어 비로소 음식을 익혀먹게 가르치시었다. 이 나라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이분을 환인씨(천제 환인씨-天帝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하늘을 대행하는 아버지)이라 하시었다. 전체 7세 동안 지속되었고, 연수는 알 수가 없다. 

❖고대문명의 시작은 환국에서 시작되었으며 童女童男으로 보아 여성이 우선되는 사회였다고 짐작된다.

❖연대로 보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황하) 이전의 문명의 시원이 환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환국(桓國)七世: 제1세 환인 안파견(安巴堅), 제2세 환인 혁서(赫胥), 제3세 환인 고시리(古是利), 제4세  환인 주우양(朱于襄), 제5세  환인 석제임(釋堤壬), 제6세  환인 구을리(邱乙利), 제7세  환인 지위리(智爲利)


환웅천왕의 배달국시대

後 桓雄氏 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후 환웅씨 계흥 봉천신지조 강우백산흑수지간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邱 

착자정녀정어천평 획정지어청구 

<해설>

후에 환웅천제께서 환인桓因을 계승하여 흥하게 되고, 천신(天神)의 조칙을 받들어서, 백두산(白山)과 흑룡강(黑水) 사이에 내려오셔서 天坪(천평)에 남자와 여자의 우물(子井女井)을 파고, 살게 하고 청구(靑邱-다스리는 땅을 가리키는 듯)에 정전을 나누어 세금을 거두고 농사를 짓도록 구획하셨다.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倍達 

지천부인 주오사 재세리화 홍익인간 립도신시 국칭배달 

<해설>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오사(五事)를 주관하시며, 세상을 이치대로 다스리고(在世理化), 널리 인간을 이롭게(弘益人間) 하기 위하여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셨다.

❖오사(우가-주곡主穀, 마가-주명主命, 구가-주형主刑, 저가-주병主病, 양가-주主善惡)

❖신시(神市): 배달국의 도읍지는 부도지에 나오는 ‘부도’와 같은 의미로 ‘천산(신강성) → 삼위산(청해성) → 태백산(섬서성) → 태산(산동성, 14세 치우한웅 때 이전)’ 등 여러 번 이동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 참고 : 치우한웅의 무덤은 산동성 동평에 실제 하며, 유적이 발굴되었다. 

❖배달(倍達):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에는 ‘구리(구려, 九黎)’로 기록되어 있다.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택삼칠일 제천신 기신외물 폐문자수

呪願有功 服藥成仙 劃卦知來 執象運神 

주원유공 복약성선 획괘지래 집상운신 

<해설>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천신(天神)께 제사 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하여, 

문을 닫고 스스로 수련하시니, 주문(呪文)을 외우며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약(藥)을 드시고 신선이 되셨으며, 괘(卦)를 그어 다가올 일을 아셨으며, 상(象)을 잡고 신(神)을 움직이셨도다.(執象運神)  


命羣靈諸哲 爲輔 納熊氏女 爲后 定婚嫁之禮 

명군령제철 위보 납웅씨녀 위후 정혼가지례

以獸皮 爲幣 耕種有畜 置市交易 

이수피 위폐 경종유축 치시교역

九域 貢賦 鳥獸率舞 

구역 공부 조수솔무 

後人 奉之爲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후인 봉지위지상최고지신 세사부절 

<해설>

여러 신령한 인물과 철인(哲人)들이 보필하도록 명하셨다. 웅씨(熊氏)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皇后)로 삼으셨으니, 혼인의 예법을 정하고, 짐승 가죽을 폐물로 하였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만들어 서로 교역이 되도록 하시니, 구한(九桓)의 모든 지역에서 조공을 하고 부역을 하였으며, 새와 짐승들도 무리를 지어 춤을 추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그분(환웅천왕)을 지상(地上) 최고의 신으로 받들고 대대로 제사를 모시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神市之季 有蚩尤天王 恢拓靑邱 

신시지계 유치우천왕 회척청구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전십팔세 역일천오백육십오년 

<해설>

신시(神市) 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이 계셨는데, 강역을 넓히고 개척하여 청구(靑邱)라 하였다. 18세(世)를 전하고 역년(曆年)은 1,565년이었다. 

초기 청구
후기 청구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창

後 神人王儉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 

후 신인왕검 강도우불함지산단목지허

其至神之德 兼聖之仁 乃能承詔繼天而建極 巍蕩惟烈 

기지신지덕 겸성지인 내능승조계천이건극 외탕유열 

九桓之民 咸悅誠服 推爲天帝化神而帝之

구환지민 함열성복 추위천제화신이제지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시위단군왕검 복신시구규

設都阿斯達 開國 號朝鮮 

설도아사달 개국 호조선 

<해설>

이후에 신인(神人) 왕검(王儉)이 불함산(不咸山-하얼삔 완달산) 단목(檀木)의 터(소도)에 내려오셨다.  지극히 신(神)령스러운 덕(德)과 성인의 어지심(仁)을 겸(兼) 하시어, 이에 능히  하늘의 조칙과 뜻을 계승하여 건극(홍범구주) 하사 지극히 높고, 크고 넓으며 멀리까지 공적이 밝게 빛을 비추어 구환(九桓)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따르게 되어, 천제의(天帝)이 화신(化神)으로서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곧 단군왕검(檀君-천군, 王儉-통치자)이시다. 신시(神市)의 옛 법도를 다시 복원하고 아사달(阿斯達)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고 하였다. 

❖아사달(阿斯達)의 뜻  1)처음 2)아침 3)윗상 4)넓다(=평양)

단군은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분치를 하였는데, 진한은 단제께서 직접 통치를 하시고, 마한, 번한은 각각 왕을 따로 두고 통치를 하였다. 

1) 송화강 아사달 시대 (BC2333~1286 : 1048년간) 길림성 하얼빈(哈爾濱), 단군왕검이 고조선 개국 후 1048년 동안 도읍을 하였다. 

2) 백악산 아사달 시대 (BC1285~426 : 860년간) 길림성 장춘(長春), 22세 색불루 단군이 쿠테타로 등극 후 도읍을 옮겼다. 

3) 장당경 시대 (BC425~238 : 188년간) 요령성(원래는 봉천奉天성) 개원(開原), 구물단군이 우화충의 반란을 진압 후 등극, 국호를 '대부여'로 개칭하고 도읍을 옮겼다. 

❖불함산(不咸山)은 아주 밝은 산이란 뜻으로 보통 백두산을 칭하나 여기서는 하얼삔의 완달산을 가리킴

❖건극建極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뜻하며 부루태자께서 중국에 전수해 줌


檀君 端拱無爲 坐定世界 玄妙得道 接化群生 

단군 단공무위 좌정세계 현묘득도 접화군생 

命彭虞 闢土地 成造 起宮室 

명팽우 벽토지 성조 기궁실 

高矢 主種稼 臣智 造書契  

고시 주종가 신지 조서계 

奇省 設醫藥 那乙 管版籍 

기성 설의약 나을 관판적

羲典卦筮 尤作兵馬 

희전괘서 우작병마 

納菲西岬河伯女 爲后 治蠶 淳厖之治 熙洽四表 

납비서갑하백녀 위후 치잠 순방지치 희흡사표 

丙辰周考時 改國號 爲大夫餘 自白岳 又徙於藏唐京 

병진주고시 개국호 위대부여 자백악 우사어장당경

<해설>

단군은 두 손을 모으고 단정(端正)이 세상(世上) 앞에 앉아 인위적으로 함이 없이 명상하는 것에 의하여 현묘(玄妙)한 도를 얻어 여러 생명들을 두루 교화하실 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주관하도록 하였으며,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게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하게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하얼삔) 하백의 딸(河伯女)을 황후로 맞아들여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박하고 두터운 정치가 사방 끝까지 흡족하게 미치었다. 병진(BCE 425)년, 주(周) 나라 고(考) 임금(BCE 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고 바꾸고 백악(白岳-장춘)으로 부터 장당경(藏唐京-요령성 심양 동북쪽 개원시)으로 옮겼다.

❖비단의 실크(Silk)가 우리말 실쿠리에서 왔다고 하며 비단 제작은 우리 민족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화충의 반란으로 44세 구물단군이 반란을 진압하고 국호를 대부여로 바꿈

❖팔조금법은 색불루 단군 때 반포합니다.

❖고시(高矢)의 형인 고수는 순임금의 아버지임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 군대가 생겼음을 시사


仍設八條 讀書習射 爲課 祭天爲敎 田蠶是務 

잉설팔조 독서습사 위과 제천위교 전잠시무

山澤無禁 罪不及孥 與民共議 協力成治

산택무금 죄불급노 여민공의 협력성치

男有常職 女有好逑 家皆蓄積 山無盜賊 

남유상직 녀유호구 가개축적 산무도적

野不見飢 絃歌溢域 

야불견기 현가일역 

檀君王儉 自戊辰統國 傳四十七世 歷二千九十六年 

단군왕검 자무진통국 전사십칠세 역이천구십육년 

<해설>

 여전히 팔조(八條)를 제정하여 법으로 삼고, 글을 읽고 쓰는 것과 활쏘기를 익히는 것을 일과로 삼았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행사를 가르침으로 삼고, 밭을 갈고 누에치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산이든 뭍이든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으며, 죄를 지어도 처와 자식에게 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고, 백성과 더불어서 함께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남자들은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들은 좋은 배필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모두 재물이 쌓여 있었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사람이 없으며, 악기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흘렀다. 단군왕검께서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하니 그 햇수가 2096년을 헤아렸다.

❖단군 8조(八條) : 환단고기 태백일사 번한세가(番韓世家)에 나온다. 

1. 사람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리고, (상살상살相殺償殺-사람의 목숨을 귀히 여김)

2.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게 하고, (상상곡상相傷穀償-사유재산이 있었음)

3.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남자는 그 집을 몰수하고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상도자相盜者: 男->노奴 女->비婢-노예제도 있었음)

4.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며, (금고禁錮)

5.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하고, (복무服軍)

6.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키며, (徵公-징공, 공동(공적인)의 일이 있었음)

7.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으로 다스리고, (笞刑-태형)

8. 사기 친 자는 반성하게 하고 훈방하나 공표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어서, 백성들은 이를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서 결혼도 할 수 없었다.(공동체사회에서 실제로 가장 큰 형벌인 셈이었다.)


壬戌秦始時 神人大解慕漱 起於熊心山 

임술진시시 신인대해모수 기어웅심산 

丁未漢惠時 燕酋衛滿 竊居西鄙一隅 

정미한 혜시 연추위만 절거서비일우

番韓準 爲戰不敵 入海而亡 

번한준 위전부적 입해이망 

自此三韓所率之衆 殆遷民於漢水之南 

자차삼한소솔지중 태천민어한수지남

一時羣雄 競兵於遼海之東 

일시군웅 경병어요해지동 

<해설>

단군 조선이 끝나기 1년 전에 진(秦) 나라 시황(BC 246-206) 임술(BC 239)년에 신인(神人)이신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길림성 장춘 동북쪽 서란시)에서 일어났다. 

정미(BC 194)년 한(漢) 나라 혜제(惠帝) 때 연(燕) 나라 우두머리였던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 하여 거(居) 하였다. 번한(番韓) 왕 준(準)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바다(海)로 들어가 망명했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이 한수(漢水)의 남쪽으로 옮겨갔다.(후 삼한) 

일시에 여러 영웅들이 요해(遼-요하, 海-발해)의 동쪽에서 다투어 군대를 일으켰다.(고두막한을 말한 듯)

북부여 영역
웅심산(서란시)
위만의 영역, 한사군 위치 하북성 창려현

❖당시 번조선 기준이 위만에게 속아 위만을 받아들여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나 위만이 배신을 하여 반역을 일으킴.


至癸酉漢武時 漢 移兵 滅右渠 西鴨綠人高豆莫汗 

지계유한무시 한 이병 멸우거 서압록인고두막한

倡義興兵 亦稱檀君 乙未漢昭時 進據夫餘故都  

창의흥병 역칭단군 을미한소시 진거부여고도

稱國東明 是乃新羅故壤也 

칭국동명 시내신라고양야 

至癸亥春正月 高鄒牟亦以天帝之子 

지계해춘정월 고추모역이천제지자

繼北夫餘而興 復檀君舊章 祀解慕漱 爲太祖 

계북부여이흥 복단군구장 사해모수 위태조

始建元 爲多勿 是爲高句麗始組也 

시건원 위다물 시위고구려시조야

<해설>

계유(BC 108)년 한(韓) 나라 무제(武帝) 때, 한(漢) 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右渠-위만의 손자)를 멸망시켰다. 서압록(西鴨綠) 사람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정의를 외치며 군대(의병)를 일으켰는데 또한 단군(檀君)이라고 칭하였다. 을미(BC 86)년 한(漢) 소제(昭帝)(BC 87~74) 때, 부여(夫餘)의 옛 도읍지에 진출하여 차지하고, 나라 이름을 동명(東明-"북부여->동명부여->졸본부여"라 칭함)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곧 신라(新羅)의 옛 땅(장춘-진한)이다. 계해(BC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高鄒牟, 고주몽) 역시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하고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니 이분이 고구려의 시조이다. 

❖다물(多勿) : 되물리자, 동언고략에 "고구려 사람들이 땅(토지)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켜서 다물(多物)이라고 하였다.“ 즉,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

❖고두막한(高豆莫汗)과 고주몽은 다른 사람

❖고두막한(高豆莫汗)의 딸 파소가 임신하여 경주로 갔는데, 파소의 아들이 박혁거세이다. 

❖북부여는 원시 고구려: 북부여건국은 서기전 239년, 고조선을 접수한해는 서기전 232년.


『삼성기』(三聖記) 上 薭  원문

「吾桓建國最古有一神在斯白力之天爲獨化之神光明照宇宙權化生萬物長生久視 恒得決樂乘遊至氣妙契自然無形而見無爲而作無言而行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 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群居于天界 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 因氏亦稱安巴堅也傳七世年代不可考也 後桓雄氏繼興奉天神之詔降于白山黑水之間鑿子井女井於天坪劃井地於靑丘持 天符印主五事在世理化弘益人間立都神市國稱培達擇三七日祭天神忌愼外物閉 門自修呪願有功服藥成仙劃卦知來執象運神命群靈諸哲爲輔納熊氏女爲后定婚 嫁之禮以獸皮爲幣耕種有畜置市交易九域貢賦鳥獸率舞後人奉之爲地上最高之 神世祀不絶 神市之季有蚩尤天王恢拓靑邱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 後神人王儉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其至神之德兼聖之仁乃能承詔繼天而建極 巍蕩惟烈九桓之民咸悅誠服推爲天帝化神而帝之是爲檀君王儉復神市舊規設都 阿斯達開國號朝鮮檀君端拱無爲坐定世界玄妙得道接化群生命彭虞闢土地成造 起宮室高矢主種稼臣智造書契奇省設醫藥那乙管版籍羲典卦筮尤作兵馬納菲西 岬河伯女爲后治蠶淳 之治熙洽四表. 丙辰周考時改國號爲大夫餘自白岳又徙於藏唐京仍設八條讀書習射爲課祭天爲 敎田蠶是務山澤無禁罪不及 與民共議協力成治男有常職女有好逑家皆蓄積山 無盜賊野不見飢絃歌溢域 檀君王儉自戊辰統國傳四十七世歷二千九十六年 壬戌秦始時神人大解慕漱起於熊心山丁未漢惠時燕酋衛滿竊居西鄙一隅番韓準 爲戰不敵入海而亡自此三韓所率之衆殆遷民於漢水之南一時群雄競兵於遼海之 東至癸酉漢武時漢移兵滅右渠西鴨綠人高豆莫汗倡義興兵赤稱檀君 乙未漢昭時進據夫餘故都稱國東明是乃新羅故壤也至癸亥春正月高鄒牟亦以天 帝之子繼北夫餘而興復檀君舊章詞解慕漱爲太祖始建元爲多勿是爲高句麗始組 也」

❖삼성기 하편에는 환국(桓國)과 신시(神市)의 역대기(歷代記)가 간략하게 적혀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윤창열교수님 환단고기 원전강독 시리즈

https://www.youtube.com/watch?v=AlpgCwnlf8Y

'얼(뿌리를 찾아서) > 국학(國學) 자료' 

https://sinabrodym.tistory.com/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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