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의 모든 노력이 공하다는 것을 마주하게 될 때를 위하여
삶은 모순적이고 무의미하다. 우리는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견뎌내는가?’ (<니체, 이진우 저>58p)
지난 12월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닌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넘기기가 힘든 한 달이었을 것이다. 오밤중에 행정권과 사법권이 군의 권력 하에 이관되어 국민의 기본권이 하루 아침에 제한될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계엄’의 사전적 정의)는 두려움에 떨어봤고,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큰 사고들에 뜬 눈으로 뉴스를 보며 밤을 지새웠다. 당장 내일의, 오늘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뉴스를 보며 좌절했고, 슬퍼했다. 그리고 그 이후엔 필히 무기력을 겪게 되었다.
‘왜 우리는 예측할 수도 없는 내일을 살아내고 계획해야 하는가?’ 이는 비단 지난 12월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오늘을 살아내고, 계획하고,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노동함은 다가올 내일과 미래가 있음이 필히 전제가 되어있다. 다만 우리의 계획된 삶의 궤적은 늘 바뀐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권력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우리는 늘 방황한다. 지난 여름, 중증외상센터에서 특별히 상대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의 삶을 볼 수 있었던 나는 ‘일을 쉬어야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그토록 허망할 수가 없었다. 왜 힘든 자들은 더 힘들어야 하는가? 탓할 주체 조차 분명치 않아 더 답답하다. 우리 모임 중 한 친구가 해주었던 말처럼, 앞으로 있게 될 내 직역의 특성 상 더욱 이 주제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을 지 모르겠다.
허무하다! 장자(莊子)는 우연을 필연으로, 필연을 우연으로 받으라 하였다. 니체는 ‘열거하기 어려운 크고 작은 일들이 네게 다시 일어날 것을 인정하라’하였다. 한편 불교에서는 모든 이러한 고민들조차도 공하다 하였다. 그 형태가 달랐을 뿐,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이 어떤 생각들과 해결책을 제시하였는 지 발제자 본인은 그들을 파묘(?)했다. 무덤에 들어간 철학자들의 멱살을 잡고, 당신들도 필히 겪었을 허무에 어떻게 답했는 지를 묻고 싶었다.
다가올 모임에서, 이제 서로 다른 필드에, 상당히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일을 살아내고, 꾸준히 노동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동력과, 해결책을 얘기해보고 싶었다.
아래는 '허무주의' 주제에 맞추어, 독서모임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허무주의'를 정의내리고, 이를 타파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깊이를 더해줄 책을 읽고, 추천한 기록이다. (1)편은 각자가 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질문으로 구성하였으며, (2)편부터는 책을 통해 각자의 질문을 해결해나가고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한 이야기를 담화록 형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작성자: @오즈)
현실은 다수 혹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해 조각됩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우리 개개인의 염원이 곧 현실에 투영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목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방해받는 지에 대해 ‘주의’에 대한 관점에서 답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무언가에 주목하며, 그 주목은 정말로 필요한지, 그리고 그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인지한 후에는 허무함에 대해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선택한 책: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link: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 - 예스24)
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
우리는 정말 무언가에 주목하고 있는가?
우리의 목표 달성 과정에 의해 무엇을 잃고 있는가?
한 줄 추천사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을 정말로 중요하게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책에서의 인상깊은 내용(발췌)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무엇을 지불하게 되는가? 우리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모든 것을 지불한다. 가령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 모든 목표, 취하지 않은 모든 행동, 다른 것들에 주목했더라면 될 수 있었던 모든 가능한 자신을 말이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대 가능했던 사라진 미래를 지불한다.
일상적으로 숫자를 쫓아가는 사소함 속에서 나는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혹은 왜 애초에 이 사람과 의사소통하기를 원했는지에 관한 더 고차원적인 관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성자: @엠킴)
발제문에 적힌 아래의 ‘거대권력’과 ‘힘든 자들’간의 격차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특히 전자의 경우 허무를 느끼기는커녕 멈출 줄 모르고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굳건히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권력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우리는 늘 방황한다. 지난 여름, 중증외상센터에서 특별히 상대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의 삶을 볼 수 있었던 나는 ‘일을 쉬어야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그토록 허망할 수가 없었다. 왜 힘든 자들은 더 힘들어야 하는가? (발제문 中)
거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왜 사회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선택한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link: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예스24)/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link: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 예스24)
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
허무주의를 느끼지 않는 집단은 누구인가?
사회적·경제적 관점에서 허무주의의 대척점/탈출구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줄 추천사
당연히 누리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두려움의 나비효과
(작성자: @푸밍)
모두가 매일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며 살아간다. (다들 J라는 게 아니다) 자신만의 가치관, 또 이를 바탕으로 생긴 우선순위들에 기반한 것이다. 다만 이는 늘상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좌절된다. 또는, 타인의 이야기와 뉴스를 보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노력들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허무함과 좌절을 미리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다만, 발제자가 참고한 니체의 경우, 권태와 허무주의가 우리 삶이 영원토록 반복되는 ‘영원회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발제자가 논하고 있는 허무주의와는 살짝 깔(?)이 다르다. 다만, 우리 삶에서 허무함에 빠지게 하고 이에서 다시 나오는 것 역시 반복되는 것으로 보고, 두 상황 모두 ‘허무’가 ‘무력’과 비슷하다고 느껴 이를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선택한 책: 니체, (link: 니체 : 알라딘) / 착각하는 인간, (link: 착각하는 인간 : 알라딘)
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
역사적으로도 인간의 역사 상에서, 또는 생물의 역사 상에서 반복되어 왔음은 자명하다. 허무주의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철학자들은 길을 제시하였는가?
-르네상스로 넘어오게 되면서 신을 중심으로하던 가치가 붕괴되고 대부분이 허무주의에 빠졌을 때, 권태에서 다시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장차 다가올 AI 산업이 더 인간의 설 자리를 뺏어가며 가치체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 때, 우리에게 불변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어떠한 것이 우리를 허무하지 않게, 의미있게 하는가?
한 줄 추천사
니체) 한국어로 출판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니체 여행 패키지(?)이자 니체 고고학의 책이랄까..
착각하는 인간) 우린 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사실 이 또한 환상일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