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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장 Aug 05. 2022

길치인데 성능 안 좋은 네비게이션을 쓰네.

어찌 됐든 도착은 하네요.

성능이 안 좋은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 긴가민가한 상황들이 많이 벌어진다.

지금쯤이면 도착하겠지 하고 다 계획 세워뒀는데 한참을 더 가야지 도착할 수 있다. 이쯤에서는 원래 안 막히던 곳이니까 빨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빽빽하게 줄 서 있는 자동차들을 만날 수 있다. 남들은 잘만 달려가고 도착해있지만, 나는 돌아돌아서 골목길을 지나서 온다. 내가 알던 길도 아닌 요상한 루트를 추천해줘서 이 길이 맞나 계속 의심을 한다. 그렇게 의심하다가 길을 바꾸는 순간, 더 길고 긴 여행길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점은 내가 길치라는 것이다. 네비게이션 탓만 하기에는 나의 부족함이 한몫 두둑히 하고 있다. 방향을 알려줘도 다른 길로 들어가는 일은 일상이고, 뺑뺑 돌아다니면서 모든 곳을 버뮤다 삼각지대 급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날 도와주고 싶어서, "너 도대체 어디있는데? 보이는 거 말해봐." 이러면, 당당하게 "큰 건물이 보여. 차가 엄청 많고, 나무가 있어." 이런 대답으로 남들도 포기하게 만드는 재주는 덤이다. 그리고 "그 쪽이 아니야!"라고 말해줘도 "아닐걸?"하는 뻔뻔함까지 완벽하다.

비효율적이지만 길치에겐 어쩔 수 없는 숙명!

내 인생도 딱 이런 식이다. 성능 안 좋은,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는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꽉 짜여진 계획도 무산이 된다. 내가 생각한 기한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쉽다고 생각한 것은 어렵고, 남들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어려운 길을 굳이 찾아가는 듯하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이 새기도 하고, 그 낯선 길 때문에 미래를 의심하고, 의심을 하는 순간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또한, 섭섭치 않게 인생에서도 길치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살아간다.  방향이라고 알려줘도 알아먹지 못하고,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줘도 고집은 엄청나서 빙빙 돌고  길을 찾아간다. 이쯤되어서 생각해보면  네비게이션은 성능이 좋았지만, 내가 문제였나 라는 의심이 피어오르게 된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남탓은 필요하기 때문에  의심은 넣어두기로 하겠다.


그래도 네비게이션의 참 좋은 점은 어찌 됐든 가다보면 도착은 한다는 것이다. 영영 이러다가 못 도착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는 것을 멈추지만 않으면 그런 일은 없다. 내 평생을 업데이트 안 된 네비게이션과 함께 한 길치로서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는 점이니 의심은 말아라. 물론, 내가 목표한 바로 그 목적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멀리 가진 않는다. 그 근방에는 도착한다. OO카페 주차장을 도착지로 설정했다면, 실제로 도착하는 곳은 주차장 입구를 못 찾아서 OO카페를 돌고 있는 것이라는 정도? 주차는 야외 주차하면 되는 거고! 그 정도면 괜찮다. 들어가서 어찌됐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은 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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