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영화가 내게 찾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영화를 사랑하고 특별히 여긴 것은 아니었다.
내가 영화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단지 “재밌는 작품"을 보기 시작해서였다.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하게 만들어준 작품은 <아이언맨 1> 이었고, 영화계에 몸담고 싶게 만든 작품은 <호빗>시리즈였으며, 선택의 순간에 영화과로 진학하겠다는 버튼을 누르게 만들어 준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다.
그리하여 오로지 흥미 하나로 12년 간의 공부하고, 그림이 하고 싶다며 연간 천 만원 가까운 돈을 입시 미술학원에 쓴 과거를 뒤로 하고, 부모님의 등짝과 반대를 무릅쓰고서 돈이라곤 10원 한 장 찍어내기 힘든 영화를 새 출발 길로 정하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영화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물론이요, 알프레도 히치콕도, 장 뤽 고다르도, 브뢰송도 몰랐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서 마주해야 한건 내가 사랑하는 것과는 크게 달랐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영화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큰 상처를 입었다. 나는 첫 수업 때 무슨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는 물음에 <달콤한 인생>이라고 대답했다가 비웃음을 샀고, 교수님이 보여주는 <아기의 점심식사>에서 당최 무슨 미적 감각을 느껴야 할지 몰랐으며, 전함 포템킨을 보며 어디가 웅장함하고 감동적인건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감히 장 뤽 고다르 영화를 보다가 수면에 빠지는 불경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누군가 본다면 얘는 영화를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비난하겠지만, 오래된 흑백 프랑스 영화를 보며 잠들지 않는 사람이 대단한 거라고 변명하고 싶다. 더불어 교수님께선 “어떻게 영화를 사랑하며 이런 작품도 모를 수가 있냐.”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교수님의 말을 반박하고 싶은건 아니다. 다만 교수님의 언행이 내게는 상처가 되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은 그 안에서 소위 쓰레기. 흥미위주로만 찍어 낸 대중영화. 예술의 축에도 못끼는 것으로 취급받았던 까닭이다. 나는 영화를 사랑하여 영화를 공부하러왔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비웃음당하는걸 보며 가슴이 무척 아팠고, 그럴 때마다 영화의 길을 선택한 스스로를 깊게 원망했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영화 학도들이 이 지점에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잃어버린다. 나는 고다르도 싫었고, 러시아 몽타주도 싫었으며, 북극의 나누크 따위에는 조금도 흥미 없었고 라쇼몽은 제목만 들어도 열이 받았다. 누군가는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흥미롭다는데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흑백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고, 내가 여기서 뭘 하는건지, 이럴거면 취업이나 잘되는 과에 갈걸, 하는후회와 자괴감에 잠 못이루기도 했다. 내 멍청함과 무딘 예술적 감성에 눈물짓기도 여러번이었고, 봐도 봐도 재미없고 끝도 없는 영화사 페이지에 태어나 처음으로 책을 저주하기도 했다.
그렇게 절망으로 점철된 학부 시절, 4년 가량을 곰팡내 나는 학부 강의실에 처박혀 있다 보니 새로운 것을 보는 시선을 배우기도 했다. 장 뤽 고다르는 여전히 싫으나 히치콕은 좋아하게 됐고, 도저히 <짓밟힌 꽃잎>을 졸지 않으며 볼 재간은 없으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를 보며 나름의 미학인지 뭔지를 파악해 내어 장장 3페이지에 걸쳐 찬미할 수 있는 허구의 찬미 능력도 얻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교수님들을 만나면 영화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 예술적 함의, 영화는 단지예술로 존중받아야 하는지, 혹은 대중의 예술이니만큼 사회적 의미와 책임을 다 해야 하는지 따위에 대해 깊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의 견해를 듣고, 나의 입장을 이야기 하고, 나아가 내 시선의 틀을 깰 수 있는 시간들은 늘 즐거웠다. 나와 온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가진 사람을 만나, 같은 영화를 보고 의견을 나누는건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더불어 다양한 영화들은 내가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만큼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삶이 어떤지,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이 어떤지, 외국인 노동자, 종교적 박해를 받는 사람들의 삶을 알지못한다. 알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해보지만 모든 것을 알고 배우기는 막막하다. 나는 영화를 택하면서 프랑스에서 알제리 사람들을 학살한 얘기를 알았고, 그리스의 경제와 정치 사정을 이해했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받는 차별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영화는 내게 있어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주었다. 나는 영화를 통해 내가 조금 더 넓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수님들의 모욕과 지루하기 짝이없는 고전 영화, 실험영화, 여타 흥미없는 흑백 무성영화들을 강제로 보면서도 영화를 놓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영화에 삶을 빚졌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평탄하고 아름다운 온실 속 꽃길 인생을 걸어오지는 못했다. 자라면서 여러번 가까운 이들의 상실을 경험했고, 죽음을 통해 무력과 우울을 학습한 까닭인지 오래도록 우울하고 외로웠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울다 지쳐 잠들었고, 고독함에 치를 떨었다. 달리 죽고 싶은건 아니었지만 크게 살고 싶은 의지도 상실한 채로 긴 시간을 살았다. 따뜻한 물에 녹기를 택하겠다는 눈사람처럼 죽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길고 긴 감정의 공백을 메꿔준 것은 영화, 그 하나였다. 사람도, 사랑도, 연인도 아니고 두시간 남짓의 영화들. 나는 외로울 때면 혼자 영화관에 갔다. 봤던 영화를 여러번 보기도 하고 우울해지면 <존윅> 같은 액션 영화를 보며 우울함을 떨치려고 애쓰기도 하고, <셰임>을 통해 인간 본질의 외로움과 고독에 공감하기도 했다. <싱글라이더>를 보고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고, <패딩턴>을 보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어떤 특정 한 편의 영화가 내 삶을 구한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보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공백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영화에게 삶을 빚졌다. 쓸데없이 거창해보이지만 진실로 그렇기에 삶을 영화로 선택한 일에 더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 영화를 택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삶이었으므로.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이세상 그 누구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치로 아끼고 애틋하게 여긴다. 교수님만큼 똑똑하지 못하고, 특별하리만치 섬세한 감수성 따위는 없기에 라쇼몽을 보고 꿀잠을 잘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내 애정이 그 누구의 것에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한다. 학부를 졸업한 후 잠시동안이나마 영화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었을 때 얼마나 우울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부족하지만 이 길이 나의 길은 맞는 듯 싶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깊게 영화를 끌어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생 브뢰송이 재미없을 수도 있고,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1.5배속이 아닌 이상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그놈의 로즈버드라고 이를 벅벅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이 삶을 택했고, 더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다. 미장셴이 어쩌니, 베프토프 집단이니, 키노-아이니 하는 거창한 말 없이도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사랑하는 일에 자격이 필요치 않듯 내가 영화를 사유하는 일도 그렇다. 나는 언제고 모자라겠지만, 언제고 사랑할 자신이 있다. 그게 내가 영화를 택한 이유다. 나는 오랜 시간을 영화관의 어둠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
별 거창할 것 없는 그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