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

사랑한다는 것이 타인을 믿는단 것의 동의어는 아님을

by 유유월


“무슨 생각 해?”
“네가 병들었으면 하는 생각.”

다음 말은 더욱 느리게 흘러나온다.

“약해 보일 때만 네가 내 것 같아.“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



그토록 유명한 문장의 책을 뒤늦게서야 읽었다.


일부일처제의 세상에서, 한 대학 교수가 어째서 셋씩이나 애인을 두고 사는지에 대한 얘기다.


진희가 가진 삶에 대한 영원한 불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행복해지리라거나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없이 살아가는 삶을 담담히 묘사해 낸다.


진희는 어떤 오해를 받아도 해명하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기에 삶에 큰 기쁨도 없지만 그만한 절망도 없다. 그의 삶은 늘 “딸기향 바디워시”로 씻고 나와, 창문 앞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삶을 보고 있을 뿐,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과는 한 겹의 유리 사이로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이다.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한 예상을 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

나는 내 전부를 바친 일, 그 끝에 잠복하고 있을 지도 모를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까지도 관객처럼 거리 밖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조차도 타자화한다.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는 이 생은 도무지 내 것 같지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진희는 자신이 애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그저 공허한 일회성의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그 순간만을 사랑할 뿐이다. 그래서 잠시 육체적 열기로 차가운 지금을 잊게 해 줄 사람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만을 원할 따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단 건, 너무 깊은 무게감을 지닌 일이니까.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라는 건 아니다.“


한 챕터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녀는 끝없이 책임으로부터, 관계로부터 달아나기만 한다. 왜냐면 진심이라는 건 동전의 양면 같아서, 하나처럼 보일지언정 각도만 틀면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진희는 너무 어릴 때 배워 버린 탓이다.




진희의 마음은, 어떤 부분은 저미도록 공감됐고, 또 어떤 부분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사랑의 가치를 그저 이 순간의 감정에 불과하다고 고정해 두는 것은 서럽게도 이해됐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이를 사랑했었고, 또 영원하리라 믿던 그 관계와 감정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졌었나.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이 오직 “지금”에만 존재한단 걸 깨달았다.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럼, 사랑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감정인가. 오천 년동안 널 사랑하겠다 말한 그 순간은 진심이었을지 몰라도, 5일 뒤에 더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여 나 또한 그처럼 순간은 사랑하되 미래는 약속하지 않는다. 지금 목숨을 줄 만큼 처절히 사랑한다 하여, 다음 달에도 그를 그토록 애정할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는 탓이다. 나는 그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설령 영원이란 약속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희의 말처럼, 그건 사랑에 대한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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