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정이현

이 지난한 삶이 나는 두려워.

by 유유월


나는 내 인생에 대고 이런 폭력을 저지를지도 몰라. 이토록 공허하고 남루해지고 마는, 지난한 삶을 살게 할지도 몰라.


정이현 작가의 글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 이력을 보니 이전에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를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그 소설 역시 지치고, 세상에 흔히 존재하는 불의를 눈감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중년의 어떤 삶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적었었다.


책임과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진실로부터 유리된 현대의 삶. 이 정도면 도덕적이야. 이 정도면 착해. 이 정도면 괜찮지, 되뇌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 앞에서 정도(正道)를 묻는다,라고.



[상냥한 폭력의 시대] 역시 비슷한 결을 공유한다.


젊지 않기에 더는 열정적이지 않고, 정의를 부르짖지 않고, 세상의 부도덕함에 분노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 세상이 정해준 길을 걸어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인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를 제외하면 소설의 인물들(혹은 조연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몇십 제곱미터의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관습적으로 출근하고, 그리 즐거이 살지도 않지만 못 산다고도 할 수 없는 인생들. 사회에서 “그 정도면 괜찮지”라고 평가받는 삶들. 수많은 사람들이 편입되고자 하는 목적지.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알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서 이것이 옳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세계.


그 세계 안에서 그들은 무임하게 서로를 할퀸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음으로써,

해야 할 때 하지 않음으로써,

들어야 할 때 듣지 않음으로써,

보아야 할 때 보지 않음으로써.


“내 일이 아니기에” 죽음을 방관하고, 누군가의 실직 앞에 침묵하고, 해서는 안 될 열병 같은 사랑을 관망한다. 불타는 사랑에 뛰어드는 일도, 불의에 맞서는 일도 없다. 소리 내기엔 너무 늙었고, 사랑도 결국 한때의 불장난임을 알고 있으며, 삶을 옥죄는 책임은 너무 많다.


그렇게 찰나의 빛은 사라지고, 낡고 남루한 일상이 삶을 메운다. 고요하게 침잠하여 가는 삶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에도 무거운 고난도 겪지 않기 위해 소리 없이 많은 걸 죽이면서 산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있지만,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 적응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낮에는 엄마들끼리 모여 유치원이서 주는 햄이나 소시지 반찬 얘기를 하는 게 가장 중차대한 일이 되어 버린 일상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내가 선택한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비록 어딘가 어긋난 걸 알더라도— 증명해야 하니까.


누구보다 자기 일에 정열적이던 선배가 아이를 키우느라 전업주부가 된 어떤 흔하디 흔한 현실처럼. 동물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봉사를 다니고 채식주의자로 살던 동기가, 작금의 남편을 만나 ”동물 복지“ 표기가 없는 고기로 만든 제육볶음을 해 먹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 2년 내로 아이를 낳고, 30평대의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을 공유하는 이들의 일상에는 침묵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폭력이 실존한다. 자신이 얻은 정상성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면 침묵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방관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혹은 20대를 지나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삶들을 읽다 보면 문득 두려워진다. 내 삶이 이토록 무감해지면 어쩌지. 첨예하게 벼려졌던 민감함이 흐려지고, 무뎌지고, 그래서 흐릿한 회색으로 흡수되어 버리면 어쩌지. 이미 많은 것을 잃었는데, 정말로, 세상에 타협하고 불의에 눈감는 “내가 알던 그 어른”처럼 되어 버리면 어쩌지.


[상냥한 폭력의 시대]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문득 견딜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내 앞에 놓인 선로를 따라가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상냥한 폭력을 저지르는 어른이 되어 있을까 봐. 아니, 이미 그런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나 역시 너무 평범하게 악한 인간일까 봐, 아니, 이미 그런 인간인 것 같아서, 두렵다.




남편이 잠든 81제곱미터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서 양은 자신의 몸이 25년의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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