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고추멸치볶음

너는 누구를 위해 젊음과 온몸을 바쳐봤냐?

by 핑크뚱


현관문을 열자 안개가 자욱하다. 흐릿해 50m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걸려 온 전화에 내 마음도 아침의 안개 낀 세상과 비슷하게 닮아 있다.

디스크 수술 후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에 계신 그녀의 전화다. 먹을 게 떨어져 가니 반찬을 해 오라신다.

나는 급하게 장 봐서 주말에 가져다 드리겠다며 전화를 마무리하며 끊었다.

나는 결혼 생활 내내 그녀로부터 받은 서러움이 많아 그녀가 불편하다.

내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는 맏며느리인 나에게 당당히 요구한다.

유약한 성격 탓에 거절도 힘들다. 그러니 아침 전화에 내 마음은 뿌연 안개 낀 세상일 수밖에.


아무거나 군이 하교한 후 마트에서 장을 봤다.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 반찬거리, 군것질거리 등등 한가득 채워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 장 봐온 것을 정리하던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준비할까?

과연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나 알까?

결혼 후 한 번도 그녀가 차린 밥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신행 다녀온 첫날부터 앞으로 내 살림이니 알아서 상을 차리라고 했던 분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를 테다.


이런저런 상념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먼저 과일을 깨끗하게 닦고 씻어 지퍼팩에 담았다.

불고기를 위해 사 온 고기는 양념에 재웠다.

배춧잎을 쪘고, 다시마는 데쳤다. 함께 먹을 양념장과 초고추장은 작은 용기에 담았다.

사온 젓갈에 편 썬 마늘과 아삭 고추를 썩어 양념의 짠맛을 조금 줄였다.

그녀는 잔멸치를 싫어한다. 그러니 중멸치와 함께 볶을 요량으로 꽈리고추도 샀다.


꽈리고추멸치볶음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멸치는 채반에서 찌꺼기를 털어내고 달군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볶아 한 김 식혀뒀다.

꽈리고추는 깨끗하게 씻어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앞. 뒤 조금씩 가위로 잘라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먼저 볶다 꽈리고추를 넣어 함께 볶았다.

여기에 양념으로 진간장, 참치액, 올리고당, 물을 넣어 고추에 잘 배게 졸인 후 미리 볶아 놓은 멸치도 넣어 함께 졸인다. 마지막으로 고춧가루 적당량과 참기름을 넣으면 꽈리고추멸치볶음이 완성이다.


꽈리고추멸치볶음을 만드는 동안 꽈리고추와 멸치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너는 누구를 위해 뜨겁게 달궈진 불구덩이에서 온몸을 내어줘 본 적이 있냐?

너는 누구를 위해 푸릇푸릇한 젊은 청춘을 바쳐봤냐?

여기 멸치는 온몸을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앞뒤 노릇노릇 볶아지는 고통을 참았다.

여기 꽈리고추는 푸릇푸릇한 청춘이 간장과 올리고당에 졸여지는 고통을 참았다.

너는 누구를 위해 온몸을 바쳐봤냐? 너는 누구를 위해 푸릇푸릇한 청춘을 바쳐봤냐?

당연코 없을 테다. 그러니 불평불만 말고 며느리 노릇 열심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