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뚱 Jan 25. 2024

사춘기 ing

엄마 이제 삐뚤어질 테야!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게 하는 스산한 바람이 나를 강하게 때리고 달아난다. 뒤이어 곧바로 다른 센 놈이 나를 건드린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두 팔로 옷깃을 최대한 나에게 밀착시키고 칼라 깃도 빳빳이 세운다.


어느덧 아들의 방학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절반에 절반이 지나갔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름 우리는 '어디로 가자. 뭐도 하자'는 이야기를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막상 시작되고는 그 마음은 겨울바람에 실려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 없다.


조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들었다. 아들의 말마따나 요술지팡이라도 되는지 무슨 문제에 봉착하거나 마음이 조급할 때 어김없이 핸드폰을 켠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으로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살폈다. 이미 아들과 몇 번의 과정을 함께 했지만 선뜻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며 이내 닫고 닫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 한 영화가 딱 내 마음을 건드렸다.


서둘러 영화관을 찾고 상영시간을 선택해 예매에 성공했다. 솔직히 아들 취향은 아니지만 엄마랑 함께하는 것이라 뜨뜻미지근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방학기간에 뭐라도 함께 해야 하는 내 열망에 영화관으로 외출을 하지만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빌리고 싶다는 아들의 열망도 무시할 수 없어 두어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둘은 동시에 입으로 춥다를 외치며 몸으로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차로 달려갔다. 차의 시동이 켜짐과 동시에 곧바로 엉따(시트 열선)를 누르고 안전벨트를 맸다. 방학 기간 동안 집에서 두툼한 전을 부치 듯 노곤노곤하게 앞뒤 뒤집기만 하다 보니 살집이 제법 붙은 몸집을 서로를 디스 하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도서관으로 갔다.


때마침 도서관에는 운 좋게 우리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있어 각자 읽을 책을 검색대에서 검색하고 찾아 자리에 앉았다. 나보다 먼저 책을 찾은 아들은 만화책 속에 벌써 들어가 혼자서 키득키득 아주 신이 났다. 나는 텀블러에 음양탕(뜨거운 물 위에 차가운 물을 섞은 물)을 만들어 책상 하나 사이로 합석해 빌린 책을 펼쳐 읽었다.


재미있는 세계로 흠뻑 빠져든 아들과는 다르게 나는 눈앞이 흐릿하고 눈꺼풀이 쉴 새 없이 껌뻑였다. 그러다 눈껌뻑임이 슬로모션이 되는 듯하다 그대로 멈췄다. 귓속으로 천천히 파고드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 눈앞에는 어이없는 웃음을 한 아들의 입술이 움직였다.

엄마, 그만 자요.
'아뿔싸! 잠이 들었군. 수면제 같던 책이 끝내 나를 꿈나라로 초대했구나.'

머쓱해져 민망한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정신을 차려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귓속으로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아휴, 엄마 진짜 언제까지 잘 거예요. 코까지 골았어요.

이런, 금세 또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아이의 거울은 부모라 했는데 거울이 엉망진창이다. 근데 뭐라고 했더라. 코를 골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들, 엄마 코 골았어?
네. 드르릉~ 드르릉

화들짝 놀랐다. 진짜 나는 왜 이럴까.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조용한 도서관에서  어디까지 민망한 모습을 보이려고 이럴까. 너무 부끄러웠다. 뜨거운 장작이 내 옆에서 활활 타고 있기라도 한 듯 온몸이 화끈했다.

아, 진짜. 그럼 엄마를 조용히 깨웠어야지. 주위 사람 다 들리게 이건 뭐.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죄 없는 애먼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한마디 했다.

엄마 이제 삐뚤어질 테야. 나를 민망하게 만든 죄로다 엄마 짜증은 이제 네 몫이야.


이날부터 나의 부끄러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아들에게만 사춘기 엄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