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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l 15. 2024

벌에 쏘이다

이번이 기회다!

서두른다고 서둘러도 아침 시간은 항상 바쁘다.

이날도 습도가 찐득하게 들러붙은 공기가 몸을 무겁게 짓눌러 평소보다 더 힘든 아침이었다. 


샤워를 끝낸 후 아침을 차리고 청소기를 돌린 잠깐사이에도 한번 더 샤워를 한 듯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서둘러 에어컨과 선풍기를 무겁고 끈적한 공기를 쫓아보지만 쉽지 않다.


눈꺼풀을 겨우 들고 잠에서 깨 일어난 아들은 에어컨과 선풍기 덕에 바뀐 아침 공기에 오스스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 나에게 필요한 서늘한 공기를 포기할 수 없다.


이날은 아침에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려 깜짝 놀랐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아 미적거리고 있으니 밖에서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앞집 주인아주머니다. 우리 집 화단에 심어져 있는 덩굴 식물 낙엽이 자신 집으로 너무 떨어진단다. 그래서 매일 쓸어야 해서 힘드어떻게든 해결을 부탁했다.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니 곧바로 알겠다고 답하고 서둘러 집안으로 돌아와 평소 아침보다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분주하게 보냈다.


오후 퇴근한 남편에게 아침 일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굼뜬 성격이라 바로 해결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근데 웬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슬쩍 밖으로 나가더니 전지가위를 찾아 덩굴식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 이런 일도 있네!


속으로 희한하다 생각하며 곧바로 실행하는 힘이 남편에게도 있었구나 싶어 좀 놀라기도 했다.


아.


단말마의 비명 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보니 잔뜩 찡그린 얼굴에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으로 잡은 남편이 보였다.


벌에 쏘였어! 말벌이야.


말벌이라는 단어에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무수히 많은 뉴스에서 본 말벌 사고가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바로 병원 가요.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곧바로 병원이 떠올랐고 그에 비해 남편은 조금 미적거렸다.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라는 말에 놀란 마음이 진정되나 싶더니, 얼마 전 다친 내 발목에 너무 무관심했던 남편의 태도가 떠올랐다.


당신도 서운함을 느껴봐요. 당신의 무관심한 태도 탓에 내가 얼마나 섭섭하고 상처받았는 줄 알아요!


나는 속으로 일갈하며 고통이 나누면 반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러움이 배가 되는 경험을 맛보게 주겠다 다짐했다. 이렇게라도 내 얄팍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팅팅 부은 입술을 내 눈앞으로 계속 들이밀며 상태를 시시각각 생중계하니  이도 싶지 않았다. 여기에 아빠가 말벌에 쏘였다는 것에 잔뜩 겁을 먹고 자신이 책에서 읽었던 <벌에 쏘였을 때 응급처치> 부분을 펼쳐 읽어주며 울먹이는 아들 덕에 이 마음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당신은 아들 잘 둔 덕 보는 겁니다.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남편은 불룩 부어오를 입술을 하고 빤히 나를 봤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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